양자역학 100주년, 한국의 양자 미래를 준비할 때[기고/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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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의과학 교수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의과학 교수
올해는 양자역학이 태동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25년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발표하며 전자, 원자, 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현대 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의 기반이 마련됐다. 유엔은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정하고 각국이 양자과학 육성 및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도록 강조하고 있다.

전 세계는 지금 ‘양자 2.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양자역학이 실험실의 이론을 넘어 양자컴퓨팅, 암호 및 통신·센서 기술로 현실화되며 산업과 경제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양자기술 분야에서는 글로벌 선두권과 격차가 있다. 정부 주도로 연구기관, 기업들이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있으나 여전히 투자 규모나 기술 개발, 활용 등에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양자 생태계 구축과 활성화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짚어보면 우선, 기초과학과 응용연구를 잇는 통합적 연구 역량이 부족하다. 아직 양자기술 분야 인력에 대한 실태 파악이나 체계적인 양성 계획이 미흡하며 특히 R&D를 주도할 박사급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둘째, 산업계 관심은 부족하고 시장의 기대감은 왜곡돼 있다.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전자 등 대기업이 양자기술 관련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IBM과 구글, 중국 퀀텀시텍 등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하면 규모와 성과 면에서 제한적이다. 또한 일부 스타트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실질적 기술력의 괴리는 양자기술 R&D 환경을 왜곡시킬 수 있다.

셋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양자기술에 연간 수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정부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적다.

한국이 양자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기초 연구 강화와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양자기술 발전의 근간은 기초과학 연구다. 이를 위해선 국가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 지원이 중요하다. 다행히 정부의 ‘양자정보과학 인적 기반 조성 사업’을 통해 고려대, KAIST, 포스텍 등에 양자대학원이 신설된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산학 연계 및 기업 주도 R&D를 촉진하는 것도 과제다. 양자기술은 결국 산업화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현재 국내 산업계는 양자에 대한 수요는 있으나 정확한 응용 분야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의 로드맵은 부재하다. 이에 정부가 대학과 연구기관에 양자 알고리즘 연구센터 설립을 지원하고, 수요가 있는 기업과 연계토록 해야 한다.

인류는 양자기술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과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한국이 반도체, 5세대(5G) 통신과 같은 첨단기술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처럼 양자기술 분야에서도 도약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학은 산학협력을 통해 인류의 주요 난제인 에너지, 기후,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약 개발에서 NISQ급(다소 오류가 있는 중간 형태) 양자컴퓨터로도 기존 슈퍼컴퓨터 활용 인공지능(AI)보다 우월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국가 첨단전략 산업인 바이오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활용 사례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나라 양자 생태계 구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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