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표 관광패키지 상품은 ‘남이섬’과 ‘판문점’ 정도였다. 중국인 유커(단체관광객)의 쇼핑 여행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관광자원이 빈약한 한국 현실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최근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압도적인 자연환경도, 잘 알려진 역사 유물도 적지만 K컬처를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러 오는 외국인이 한국행 티켓을 끊고 있다.
글로벌 여행플랫폼 클룩(Klook)의 한국 지사를 이끌고 있는 이준호 지사장(40)은 11일 “소규모 그룹 투어와 체험 상품이 최근 2년 새 크게 늘었다”며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색 체험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국내 1인 사업자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클룩은 세계 여행지의 다양한 액티비티, 투어, 교통, 숙소 등을 예약할 수 있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이다. 2014년 홍콩에서 설립됐고 한국엔 2017년 진출했다. 이 지사장은 이때 클룩에 합류했다.
그는 미국 칼튼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삼성전자에서 3년간 근무하며 갤럭시노트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다 “세상이 파워포인트와 보고서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을 것 같다”며 사표를 내고 500만원을 들고 2년간 세계여행을 했다.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회사에 다녔지만 막상 여행 예약을 모바일로 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뒤 한국사무소를 준비 중인 클룩에 합류했다.
이 지사장은 “여행 앱의 편의성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방문객의 시야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편과 체험상품 예약 등 클룩의 강점이 한국에서 제대로 발휘된 것은 K컬처 열풍을 타기 시작한 2~3년 전부터다. 빈약한 관광 자원을 스토리와 문화의 힘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잇달아 성공했다. 야구장에서 한국 특유의 응원문화를 체험하며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긴다거나 K뷰티 붐을 타고 자신의 피부 톤과 맞는 색을 전문업체에서 컨설팅받는 ‘퍼스널 컬러 팔레트’ 같은 상품이 나왔다. K팝 댄스를 연습실에서 배워보거나 서울 북한산과 부산 금정산 등을 등반한 뒤 막걸리에 파전을 함께 먹는 투어, 스님이 태극권을 가르쳐주는 일일 클래스, 한국 라면을 먹어볼 수 있는 PC방 체험 상품도 있다.
클룩이 기업·기관과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e스포츠 구단인 농심 레드포스팀의 서울 구로구 사옥을 방문하는 상품, 올리브영과 함께 기획한 ‘올리브영 매장 투어’ 상품 등이 나왔다. 이 지사장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테마로 한 투어 상품도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지난달 한국 관광산업 글로벌화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관광공사 표창을 받았다. 그는 “외국 방문객 10명 중 8명은 서울만 방문하는데 이를 개선하려면 매력적인 지방 관광상품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클룩이 고속버스조합과 협업해 전국 버스를 실시간 예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첫 번째 교두보다. 그는 “경주 부산은 기본이고 충북 단양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도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며 “지방 관광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들이 지속 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클룩의 다음 목표”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