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예술을 즐기는 가장 재밌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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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예술을 즐기는 가장 재밌는 방법

방학이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술 수업을 열었다. 추운 날씨에도 엄마와 아이들이 갤러리에 모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참여자는 젊은 아빠와 여섯 살 딸 재이. 막 육아 휴직을 시작한 아빠였는데, 둘째 아이는 장모님께 맡기고 먼 길을 왔다. 신청은 엄마가 했다면서 여섯 살짜리도 그림을 볼 수 있는지 갸우뚱하며 왔다고 했다. 갤러리는 곧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즐거운 놀이 공간으로 바뀌었다. 참여자 모두에게 그림을 찾는 재밌는 미션을 줬다.

첫 번째 미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찾기예요! 두 번째 미션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을 골라주세요!

이런 미션 감상법은 그림을 보는 시각을 단번에 뾰족하게 바꾼다. 수동에서 능동태가 되고, 눈을 빛내며 그림을 샅샅이 보게 된다. 예술의 주체가 나로 바뀌는 경험이다. 지금까지 그림을 보러 가면 아무래도 예술이 우위에 있었다. 명화 앞에선 괜히 압도당하고, 다른 전시에서도 잘 모르니 가만히 한 바퀴 돌다 슬그머니 나가고.

재이는 김선옥 작가의 ‘그날도 꽃비가 내렸지’라는 작품을 한참 들여다봤다. 봄날의 꽃길을 엄마와 어린 딸이 손잡고 걷고 있는 뒷모습. “저는 이 그림이 제일 좋아요. 엄마랑 나 같아요.” 재이 아빠는 딸의 말에 뭉클함을 못 이기고 꼭 안아줬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빠가 육아를 맡으며 딸은 엄마 얘기를 잘 안 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아빠가 속상해할까 봐 그러는 것 같다고. 게다가 둘째가 있다 보니 재이를 너무 큰 누나 대하듯 책임을 지운 것 같다고. 아빠 품에 안겨 이야기를 듣던 재이가 눈물을 쓱 훔쳤다. 요 어린아이가 부모 마음을 다 알고 있다. 그림 한 점이 가족의 사랑을 뜨겁게 이어줬다.

이 사랑스러운 아빠와 딸은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왔다. 재이가 또 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원했다고. 그림으로 마음을 말할 수 있다는 걸,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알아챈 가족. 예술이라는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에 다가가는 이들은 작품을 응시하는 눈길만으로도 이미 특별하다. 느리게 걷는 걸음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다.

거기에 더해 ‘미션 감상법’을 알려드리고 싶다. 단번에 예술 향유의 주체가 되는 신기한 감상법이다. 전시회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질문을 만들면 된다. ‘좋아하는 한 점 고르기’를 기본으로 주제를 바꿔 가는 것이다. 가령 날씨가 추운 날에는 ‘나를 따뜻하게 하는 그림 한 점’을 찾아보면 된다. 어떤 날은 ‘내 침대맡에 걸어놓고 싶은 그림’을 골라도 좋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침대맡에 걸어두고 싶은 그림은 대체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때론 ‘조금 이상한 그림’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전시회에서는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불편해하는지,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떠한지, 나를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물론 함께 간 누군가의 다양한 면면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곧 봄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고 피는 꽃인데도 늘 푸릇푸릇 설렌다. 계절이 펼치는 자연 예술이 경이롭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전시회에 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땐 시야를 확 넓혀야 한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물감이 쏟아진 하늘, 구름이 만든 조각, 벚꽃 휘날리는 미디어 아트, 가족이 함께 웃는 그림까지. 우리의 시선을 예술로 전환하면 된다. 예술 체질이 되고 나면 꼭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마음의 감각이 깨어나 삶을 향유하게 된다. 예술 교육의 궁극적 목표도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술이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아닐는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점점 더 예술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봄날의 전시회에서 꼭 나만의 한 점 미션을 기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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