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국문학도 시절 김수영 시인(1921~1968)은 한마디로 문학적 우상이었다. 문학평론을 하는 어느 선배가 시집 <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년 초판본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어떤 시집이기에 저럴까 싶어 학교 도서관이었는지 학교 앞 책방이었는지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닌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덕분에 1964년 시인이 마흔셋에 써서 잡지 ‘사상계’에 발표했다는 작품 ‘거대한 뿌리’를 읽고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풀’을 읽고 나서는 마침내 김수영 시인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1968년 5월 29일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같은 해 8월 ‘현대문학’에 유고(遺稿)로 발표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집 <거대한 뿌리> 1974년 판본 이전, 그러니까 김수영 시인 생전에 이미 한 권의 시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부산에 사는 어느 고서 수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필자가 초판본과 창간호를 수집해서 ‘처음책방’이라는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몇 종의 희귀본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그가 보내온 희귀본 목록에 <달나라의 장난>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시집에 서른일곱 번째로 실린 표제작 ‘달나라의 장난’은 전쟁 직후인 1953년 발표된 것으로 김수영이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부산으로 갔을 때 잡지 ‘자유세계’의 청탁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 첫 작품인 것이다. 그때 아내는 김수영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가족과 단절된 채 부산에 홀로 버려진 듯한 암담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은 흡사 ‘달나라의 장난’ 곧 별세계나 다름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달나라의 장난’ 중)
김수영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여전히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연신 ‘기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와는 달리 빛깔은 하얘도 공해에 찌들어 그냥 먹을 수도 없고 지저분한 자국만 남기는 요즘의 ‘눈(雪)’을 시인은 알지 못하리라.
한겨울 대지를 덮으며 내리는 눈도 진정 하얗게 쌓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거짓부리 없이 맑고 하얀 곳이 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르지만, 김수영 시인이 남긴 시편들만큼은 세상을 향한 일침으로 언제까지나 우리 곁을 지켜주리라 믿는다. 안타깝게도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2025년 5월 22일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7년 만에 하늘에서 다시 만났을 두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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