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사람도 다시 만나야 한다면?… ‘아모르 파티’가 필요한 순간[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1 week ago 5

모든 일이 반복된다는 ‘영원회귀’
선택 기준은 반복해도 괜찮은 것… 현실에선 싫은 만남 피할 수 없어
고통 견뎌내는 방법으로 ‘운명애’
고통-슬픔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영원회귀 두려움 극복할 수 있어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니체는 ‘운명애’라는 개념을 통해 덜거나 더할 것 없이 인생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니체는 ‘운명애’라는 개념을 통해 덜거나 더할 것 없이 인생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강조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니체의 ‘영원회귀’와 ‘운명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세상사라면 처음에는 사랑으로 끌리고 끝에는 미움으로 멀어진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친밀했던 두 사람이 이별로 갈라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니체는 사랑으로 이어지고 미움으로 끊어지는 인연을 ‘영원회귀’와 ‘운명애(amor fati·아모르 파티)’를 통해 해석한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무한한 시간에 같은 것이 되돌아 반복되는 우주의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해가 뜨고 지며 달이 차고 기우는 일과 같다. 4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듯 우주의 생성소멸은 영원히 회귀한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시들어 가며, 모든 것은 다시 피어난다. 존재의 해(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부러지며,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며,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우주의 존재는 매 순간 영원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당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적용해 유한한 에너지가 무한한 시간을 통해 생성, 소멸하면 같은 것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마치 주사위를 던지면 같은 수의 배열이 나오는 것처럼, 우주의 영겁의 시간에 똑같은 것이 생겨난다는 논리다. 따라서 이 세상의 많은 일들은 과거에 반복됐고 앞으로도 똑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차별적으로 반복된다면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 지겹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불행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지겨워하는 왜소한 사람’도 영원히 되돌아오게 돼 있다며, 그 비애를 ‘짜증스러움’과 ‘메스꺼움’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싫은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우주론적 해석’에는 문제점이 있다. 필자가 볼 때 ‘영원회귀’는 실제로 일어나는 우주의 객관적 현상이 아니라 좋음과 나쁨에 대한 인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사고실험이자 가설이다.

칸트에 따르면, 좋음(善)은 보편성을 갖는다.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통해 인간은 어떤 것이 좋음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가령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은 누구에게나 타당한 도덕준칙이 된다. 그러나 니체에게 좋음은 영원회귀를 통해 선택되는 ‘반복 가능성’에 있다. 좋음이란 내가 무한 반복하더라도 싫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커피 마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단 한 번도 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나쁨(惡)이 된다. 이처럼 영원회귀를 통해 좋음과 나쁨을 가르는 선별의 원칙은 칸트의 보편적 도덕법칙이 아닌 개별적인 원칙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가령 전공이나 취미, 직업을 선택할 때 영원회귀 사상을 활용하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선명해진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과 절대로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는 반복을 통한 선택과 배제의 원칙이자 사랑과 증오의 원리가 된다. 가장 좋은 것(善)을 골라내는 기준은 가장 나쁜 것(惡)을 제거하는 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늘 보고 그리운 사람은 인연이 되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악연이 된다. 우리 인생에서 영원회귀는 타자와의 무한한 만남을 뜻한다. 그러나 버킷리스트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을 골라서 적는다 해도 현실에서는 싫은 사람을 완전히 피할 방법이 없다. 현실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적과 동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인간의 삶과 그로 인한 공포와 증오 등 부정적 감정을 상징하는 뱀 원형.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인간의 삶과 그로 인한 공포와 증오 등 부정적 감정을 상징하는 뱀 원형.
니체는 싫어하는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야 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뱀에 비유해 설명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떤 양치기의 입에 달려 있는 시커멓고 묵직한 뱀 한 마리가 목구멍으로 들어간 상황을 설명한다. 뱀은 영원회귀를 뜻하는 둥근 모양의 동물이다. 영원회귀를 통해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참고 견뎌낼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타자와 다시 만나게 되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입안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깨문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고 외친다. 그래서 양치기는 뱀의 머리를 깨물어 뱉어 낸 다음 질식사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제 영원회귀가 주는 공포, 구역질, 증오의 감정을 완전히 극복했다. 뱀의 머리를 물어뜯었다는 것은 영원회귀의 고통을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좋은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것을 긍정한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돼야 한다. 니체의 ‘운명애’는 더하는 것과 빼는 것 없이 자신 인생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똑같은 삶을 다시 살아도 후회하지 않는 긍정. 그것이 운명애다. ‘그것이 인생이었던가, 다시 한 번 더’를 외칠 때,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것에는 역설적으로 고통이 포함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이제 헤어져 증오하게 된 사람마저도 운명적인 만남으로 긍정된다. 악연마저 인연의 고리로 잇는 필연적인 사랑이 운명애다. 미워하는 사람도 되돌아오면 다시 만나 포용할 수 있는 ‘바다’처럼 넓은 사랑이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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