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콩고 원주민 잔혹하게 학살한 벨기에 2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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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콩고)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10여 개국이 휘말렸던 1차, 2차 콩고 전쟁처럼 다시금 ‘아프리카 대전’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현재 콩고는 1994년 르완다 대학살 이후 심화된 종족 갈등과 동부 지역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둘러싼 무장 단체들의 난립으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이 극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의 근원을 벨기에의 식민 통치에서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때 콩고는 벨기에 레오폴드 2세(1835∼1909·사진)의 개인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1865년 즉위한 레오폴드 2세는 제국주의 절정기 속에서 후발 주자였던 벨기에의 식민지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콩고 지역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벨기에 국민과 의회가 해외 식민지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레오폴드 2세는 개인 자산으로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를 고용해 콩고 지역을 탐사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지 추장들을 속여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레오폴드 2세는 1885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콩고자유국’을 설립하고, 주요 열강들로부터 콩고를 벨기에 국가가 아닌 개인 소유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 사회의 감시를 받지 않고 콩고를 극단적으로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콩고자유국에서는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잔혹한 식민 통치가 이어졌습니다. 고무와 상아 채취를 위해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현지인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발이 잘리거나 살해당했습니다. 학살과 기아, 질병, 강제 노동으로 희생된 사람은 약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 콩고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콩고의 참상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레오폴드 2세는 콩고를 벨기에 정부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08년 콩고자유국은 벨기에 식민지(벨기에령 콩고)로 전환되었고, 레오폴드 2세의 개인 통치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콩고의 경제 구조는 자원을 수탈당하는 형태로 굳어졌습니다. 1960년 벨기에는 갑작스럽게 콩고의 독립을 허용했지만 이는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독립과 동시에 발생한 권력 공백으로 콩고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쿠데타와 내전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콩고가 겪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은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잔혹했던 식민 통치가 그 역사적 뿌리인 셈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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