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기루에 가까워지는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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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신기루에 가까워지는 탄소중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해결 방안으로 국내 석유와 가스를 적극 개발하겠다고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화석에너지 사용의 걸림돌이던 파리기후협정 탈퇴와 에너지정책의 중심추를 ‘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급선회하는 미국 에너지 해방(Unleashing American Energy)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마디로 화석에너지의 귀환이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유엔 기후체제 탈퇴는 벌써 세 번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과 2025년 두 차례에 걸쳐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모두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각각 파리협정을 태동시키고 미국을 협정에 복귀시켰다. 미국에서 기후변화 이슈의 정치화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주기적으로 정권이 바뀌는 민주국가에서 정치화한 이슈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초강대국 미국의 기후변화 정책 일관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더 나아가 세계적 이슈인 기후변화 부침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정책의 핵심은 화석에너지 퇴출이다. 실제로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에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계수가 가장 높은 석탄의 조기 퇴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목표 설정부터 난항이다.

최초 추진하던 ‘석탄 발전의 단계적 폐지’가 논란 끝에 ‘단계적 감축’으로,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이 해석하기도 모호한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이라는 식으로 목표가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문제는 하향된 목표조차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영국은 2022년 30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탄광 개발을 승인했고, 탈석탄 선봉 국가로 알려진 독일마저 최근 불거진 에너지발 경제위기론에 영향받아 탈석탄 철회를 시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의 석유, 가스 적극 개발 정책은 화석에너지 퇴출을 크게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탈석탄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석탄 의존율이 40%를 넘는 국가는 공교롭게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모두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이다. 이들 국가에서 성장은 곧 큰 폭의 석탄 소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도국에서 석탄은 산업 측면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에너지다. 석탄은 채굴, 운반, 저장 과정이 비교적 단순한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개도국에 유리한 데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비록 석탄이 환경 측면에서는 불리하지만,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서 환경은 종종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될 뿐이다. 선진국에서 석탄을 아무리 줄여도 세계 석탄 소비량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불편한 현실이다. 탄소중립이 점점 신기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 기후 및 경제 질서에서 주도권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과 보조를 맞춰 탄소중립 의무를 지켜나가되, 혹시 있을지 모를 ‘탄소중립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중단)에도 대비해야 한다. 앞장서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에 올인하려는 일부 정치권이 세계적 추세와 현실의 제약을 냉철히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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