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회 연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장한 소위 ‘공정 성장’은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아류다. 이 대표는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하며 성장을 기본사회에 갖다 붙이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성장론이 아니라 실패한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변질하는 것이다. 그리고 먹사니즘이니 잘사니즘이니 하면서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 역시 문재인 정권 때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로 경험한 막사니즘과 못사니즘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애초에 성장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기본소득에 억지로 성장을 꿰맞추니 제대로 된 성장론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정책도 유행을 탄다. 정치 세계에서는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짝퉁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정치 위기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추가적으로 하락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더니, 우수마발(牛溲馬勃)이 성장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이미 짝퉁 성장론을 경험한 바 있어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실패한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이 아니라 분배론이었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은 분배론으로도 존립에 실패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의 짝퉁 버전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그냥 무턱대고 나눠 먹자 하면 퇴보만 초래할 뿐이고, 나눔을 통해 성장하려면 ‘잘’ 나눠야 한다. 이는 수십 년간 선진국들이 복지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검증된 것이다.
복지국가는 통상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부여하고, 특히 취약계층에는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물질적 급부를 제공한다. 그리고 선진국들이 경험한 바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복지 혜택은 도덕적 해이에 따른 근로의욕 감소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복지국가에서도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 자발적 노력을 요구하는, 일과 복지의 조화인 생산적 복지(workfare)로 진행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냥 막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근로의욕을 저해하지 않게 소득이 작고 어려울수록 더 주는, ‘잘’ 나눠주는 것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고 그 성장의 과실로 복지국가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보수의 성장론이나 분배론이 나은 것도 아니다. 보수의 경우도 복지정책의 기본 철학은 박근혜 정부 때 시도한 생산적 복지 외에 별다른 청사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복지국가라면 복지 재원 조달 방법을 포함한 그에 맞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집권하면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이행에 맞지 않는 기본시리즈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보수든 진보든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잘’ 나누는 방법에 관한 고민은 물론 성장 과실로부터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추가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진보는 대놓고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좁은 세원, 높은 세율’로 부자 과세라는 편 가르기에만 집중해 오히려 경제와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보수 역시 비슷한 포퓰리즘에 빠져 세금만 깎아주면 표가 온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좁은 세원, 낮은 세율’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조세정책에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 결국 두 정당 모두 복지국가로의 이행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