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1970년대까지 독보적 위상, 영부인만 4명 배출
민주화 이후 여권 신장 반비례해 여대 전반적 하향세
특혜 논란…서울권 약대 女 편중, 이대 로스쿨은 남자 불허
여대 존속? "시대변화 읽고 정체성 떠난 새 모델 구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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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CJ엔터테인먼트는 자사가 배급한 영화 속 최고의 캐릭터로 '타짜' 김혜수가 연기한 정마담이 꼽혔다고 20일 밝혔다. 2015.10.20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2006년 영화 '타짜'(감독 최동훈)에서 도박판을 쥐고 흔드는 '정마담' 역의 김혜수가 남긴 명대사다. 1970년생 개띠로, 당시 36세였던 김혜수는 진짜 이화여대 출신인지 궁금증이 돌 정도로 이 대사는 사회적 파급력을 낳았다. 김혜수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이대 나온 여자'가 '타짜'의 상징적 이미지가 된 것은 김혜수라는 배우의 압도적 카리스마에 더해 이대만이 가진 독보적 위상과 세련된 엘리트 이미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대 출신은 1970년대까지 재벌과 고위층에서 '1등 신붓감'으로 꼽힐 만큼 우월적 지위를 누렸다.
역대 영부인 중 이대 출신으로는 전두환의 배우자 이순자(의대 중퇴)를 비롯해 김영삼의 손명순, 김대중의 이희호, 이명박의 김윤옥이 있고, 국무위원 등 고위 공직자는 노무현 정부 총리인 한명숙과 김옥길,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 등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재벌가에는 이병철의 딸 이명희(신세계), 정주영의 며느리 현정은(현대그룹), 신격호의 딸 신영자(롯데)가 이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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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손명순, 이순자, 이희호, 김옥숙 여사(왼쪽부터)가 김대중 대통령 초청 전직 대통령 부부 만찬에 참석하기 전 환담하고 있다. 네 사람 중 김 여사를 제외한 3명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1998년 7월 31일.
이른바 '이대 프리미엄'은 고도성장기에 정점을 찍은 뒤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연·고대 다음 수준이던 대입 성적은 민주화 이후 여성의 학력 및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는 이대만이 아닌 모든 여대가 맞닥트린 현상이다. 1978년 수도여대(세종대)를 시작으로 90년대 들어 성심여대(가톨릭대)와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상명여대(상명대), 부산여대(신라대)가 공학으로 전환했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급감, 남녀공학 및 이공계 선호, 젠더 의식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혜 논란도 여대의 지위를 흔드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 소재 약대의 정원이 대표적이다. 인서울 약대 8곳 중 4곳(이화·숙명·덕성·동덕)이 여대로, 이들 4개 대학의 정원을 합치면 인서울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약사가 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5곳 중 유일한 여대인 이대 로스쿨 역시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국내 유일의 대학원으로 남아 있다. 입학 정원이 100명으로 서울대(150명)와 연고대(120명) 다음으로 큰 규모라 더욱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로스쿨 도입 이전의 법학과 정원과 학교 역량을 고려해서 받은 정원이라 하지만, 같은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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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가 내부 진통 끝에 남녀공학 전환을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여성만의 대학'을 유지하려는 정체성과 현실적 생존 전략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대의 딜레마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학교의 이번 선택에는 정체성의 울타리 안에 머물면 영원히 도태될 것이란 위기감이 작용했다 할 것이다.
물론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하는 사회적 소수자 논리는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이 곧 대학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동덕여대 파동도 단순한 공학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여대라는 제도 자체가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어떤 생존전략을 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결국 대학의 생존은 시대의 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읽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대가 현실을 직시하고 정체성의 틀을 깨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어 나간다면 '여대의 시대'는 형태만 바뀐 채 또 다른 모습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2월07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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