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붐을 가장 잘 활용한 국가는 미국이다.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스타트업 아메리카’를 선언하며 규제 완화와 자본 접근성 확대를 약속했다. 여기에 이미 탄탄히 자리잡고 있던 민간 투자 생태계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재들이 더해지면서 미국의 스타트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현재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월마트와 버크셔해서웨이를 제외한 8곳은 스타트업 출신 기업으로, 모험 자본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더 놀라운 점은 글로벌 순위에서도 10위권 내 8개 기업이 스타트업 출신 미국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심각한 무역 적자가 발생해 글로벌 10위권 안에 드는 미국 기업이 두 개에 불과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스타트업 혁신경제 도입으로 완벽히 부활한 것이다.
국내에도 주목할 만한 스타트업 출신 기업들이 있다. 한국기술투자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투자를 각각 받으며 성장한 네이버와 셀트리온이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포진했다. 하지만 50위권까지 확장하면 추가되는 스타트업은 카카오, 크래프톤, 하이브 정도에 그친다. 미국처럼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수준은 바라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도 뒤처진다는 점은 아쉽다.그러나 뜻밖의 영역에서 우리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변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위계적이고 경직된 대기업 조직문화를 답습하는 대신, 수평적인 소통과 실무자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선진화된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기존 기업들이 규칙에 맞춰 움직이는 복합계 시스템이라면, 스타트업은 구성원 각자가 독립성을 가지고 판단하며 외부 변화에 대응하는 복잡적응계 방식이다. 스타트업 근로자는 상부의 지시를 수행하는 부품이 아니라, 각자 소형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한 독립적인 모듈처럼 작동한다. 대기업 출신 경력직이 스타트업에 입사했다가 ‘이건 회사도 아니다’라며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스타트업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성공을 향한 강한 열망 때문이다. 가진 것 없는 후발주자가 모든 것을 갖춘 경쟁자를 이기려면 구성원의 헌신과 몰입이 필수적이며, 이는 노비가 아닌 주인만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에 최적화된 일터를 그 세대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스타트업은 정부의 지원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라는 장애물만 치워주면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이것이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복잡적응계의 특징인다. 그런데도 새 사업을 하려면 근거 법률이 있어야 하고, 일각에서 이를 만들려고 모처럼 나서더라도 결국 기존 사업자를 의식해 제동을 걸면서 사업 자체가 좌절되는 일도 적지 않다. 정책 입안자들이 여전히 좋은 계획을 촘촘히 잘 짜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 복합계적 사고에 머물러 있어 아쉽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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