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작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305〉

2 weeks ago 3

천리 아득한 누런 구름, 어슴푸레 빛을 잃은 해.
북풍은 기러기를 몰아치고 눈발은 어지러이 흩날린다.
그대 가는 길에 지기 없을까 걱정은 마시라.
천하에 그 누군들 그댈 모르겠는가.
(千里黃雲白日曛, 北風吹雁雪紛紛. 莫愁前路無知己, 天下誰人不識君.)

―‘동대와 작별하며(별동대·別董大)’ 제1수·고적(高適·약 704∼765)

간결한 위로 한마디, ‘어딜 가든 다 그대 음악을 알아주리니 걱정 마시라’. 칠현금 연주의 명인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시인이 건넬 수 있는 말은 이뿐이었다. 삭풍이 불고 눈이 날리는 폐색의 겨울, 해 질 녘이어서인지 자욱한 황사 탓인지 구름도 태양도 윤기를 잃은 채 어슴푸레하다.

동정란(董庭蘭)이란 음악가와 작별하는 자리가 이리 스산하다. 한때는 재상의 권력을 뒷배로 명사들과 교유도 하고 제법 기세도 떨쳤다는데 적빈(赤貧)의 신세로 떠돌다가 시인과 조우한 것이다. ‘동대(董大)’라 부른 건 동씨 집안의 맏이라는 뜻. 가난하기는 시인도 마찬가지여서 작별 인사로 술 한잔도 나눌 수 없었던지 ‘대장부의 가난이 무어 그리 대수랴만, 오늘 그댈 만났는데 술값이 없구나’(‘동대와 작별하며’ 제2수)라 토로했다. 짐짓 가난에 초연한 듯 호쾌한 모습을 보였지만 초라한 작별의 자리가 못내 안쓰럽다.

젊은 시절 곤고(困苦)한 삶을 살았던 시인은 변방을 들락이며 경륜을 쌓았고, 동대와의 이 작별이 있은 지 2년 후 맹장 가서한(哥舒翰)의 막료로 들어갔다. 안사의 난 시기에 숙종으로부터 군사적 지략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고, 선비 출신이면서 군공(軍功)으로 봉작을 받는 특이한 이력까지 남겼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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