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杯汝來前. 老子今朝, 點檢形骸. 甚長年抱渴, 咽如焦釜. 於今喜睡, 氣似奔雷. 汝說劉伶, 古今達者, 醉後何妨死便埋. 渾如此, 歎汝於知己, 眞少恩哉. (…) 與汝成言, 勿留亟退, 吾力猶能肆汝杯. 杯再拜, 道麾之即去, 招則須來.)
―‘술을 끊으려고 술잔이 접근치 못하게 경고한다(장지주계주배사물근·將止酒戒酒杯使勿近)’ ‘심원춘·沁園春’
신기질(辛棄疾·1140∼1207)
자신의 음주에 술잔의 음모가 개입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애먼 술잔을 희생양으로 삼은 동기가 자못 궁색하다. 시인이 건강을 이유로 단주를 선언하자 술잔이 대꾸한다. 평생 죽림에 묻혀 음주를 즐긴 유령, ‘술맛 품평의 1인자’라는 그도 ‘술 취해 죽어 땅에 묻히면 그만’ 아니던가요. 애주가라면 이 정도 대범해야지요. 애당초 호응해 줄 걸 기대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술잔의 ‘박정’이 괘씸한 듯 시인이 일갈한다. ‘냉큼 물러나라.’ 한데 왜 하필 마무리가 ‘부르시면 꼭 돌아온다’인가. 금주는 물 건너간 모양이다. 이런 가사는 전통적 운문 행(行) 가르기보다 판소리 사설 조로 읽어야 제맛이 날 듯하다. ‘심원춘’은 곡명.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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