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직업선택의 자유’ 위반으로
탄핵될 줄이야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하려면 내란죄 따져야
엮으려면 얼마든지 엮는 헌법 위반은 곤란
우리 헌법은 탄핵 사유로 독일과 비슷하게 ‘헌법이나 법률 위반’을 든다. 헌법 위반을 다루는 한에서 헌법 재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때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유타 림바흐가 “헌법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직접 적용 가능한 규정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유념해야 한다.
헌법은 대개 직접 적용되지 않고 법률을 통해 적용된다. 림바흐를 인용할 것도 없이 법학개론 수업만 들어도 다 아는 내용이다. 위헌 행위 중에 중대한 건 이미 법률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법률로 처벌할 수 없는 위헌 행위라면 별로 중대한 것이 아니다.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탄핵 사유에 ‘중대한’이라는 말을 집어넣었다. 중대한 헌법 위반은 이미 법률 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경은 헌법이 직접 적용 가능한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탄핵 사유를 ‘중대한 법률 위반’으로 바꾼 것과 다름없다.박근혜 대통령의 주된 탄핵 사유가 어이없게도 헌법 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위반이었다. 당시 국회는 대통령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대기업들로 하여금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내게 한 출연금이 뇌물죄라고 소추했으나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헌법 위반으로 바꿨다. 헌법 위반으로 소추됐어도 가능한 한 명확한 법률 위반으로 바꿔 다뤄야 할 판에 법률 위반으로 소추된 것마저 애매모호한 헌법 위반으로 바꾼 것이다.
헌재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직업경영의 자유’를 전제로 하며 대기업의 의사에 반해 출연하게 한 것은 ‘직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재가 위헌으로 엮은 뇌물죄는 나중에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났다. 헌법은 개방성이 있어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헌재 식으로 엮으면 위헌으로 걸리지 않을 행위가 드물고 탄핵이 남용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된 탄핵소추 사유 중 비상계엄은 헌법이 직접 적용되는 몇 가지 예외 중 하나에 해당된다. 다만 비상계엄이 헌법 요건에 맞게 선포됐는지와 내란죄는 별개다. 내란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이기 때문에 이미 법률에 따로 규정돼 있다. 뇌물죄와 내란죄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대표적인 탄핵 사유다. 뇌물죄에 이어 내란죄마저 헌법 위반으로 다룬다면 우리나라 탄핵 제도는 돌이킬 수 없는 비정상의 길로 들어선다.
미국은 탄핵 사유를 모두 법률 위반으로 구체화해서 다루며 혐의별로 표결해 소추한다. 빌 클린턴의 경우 4개 혐의에 대해 각각 표결에 부쳐져 2개 혐의에 대해서만 소추됐다. 이런 나라에서는 혐의별로 소추를 철회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모든 혐의를 뭉뚱그려 한번에 소추하기 때문에 혐의를 떼어내 철회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재의결 없이 불가능하다.헌법학자 허영에 따르면 비상사태에 대한 판단은 1차적으로 대통령에게 있고 2차적으로 국회에 있다. 대통령은 비상사태라는 판단에 따라 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는 비상사태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해제를 요구했고 대통령이 수용했다. 그렇다면 이 계엄 자체가 중대한 위헌 행위인지 의문이다. 관건은 계엄 선포와 해제 사이에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이 있었는지다. 결국 내란죄 성립 여부가 중요하다.
위헌심판이 민사소송법이나 행정소송법을 준용하는 것과 달리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돼 있다. 수사기관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자체에 반하는 것으로 위법이다. 다만 헌재에서 형사재판에서의 불이익을 이유로 증언을 거부하는 피의자가 있는데 그런 경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였던 찰스 블랙의 ‘탄핵 핸드북(Impeachment: A Handbook)’에 따르면 탄핵에는 형사재판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beyond a reasonable doubt)’ 증명까지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민사재판의 증거 우세(prepondence of the evidence)보다는 훨씬 엄밀한 ‘압도적(overwhelming)’ 증거 우세가 요구된다.
헌재 밖의 상황이 촛불 시위에 짓눌린 박 대통령 때와 많이 다르다. 이럴 때일수록 헌재가 책 잡힐 게 없는 절차에 따라 심판해야 선고에 대한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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