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민주당 폭주와 윤석열 탄핵 사이에서

1 week ago 5

박근혜 때보다 탄핵 반대 비율이 높은 건
민주당 폭주가 계엄의 한 원인이기 때문
탄핵으로 오히려 민주당 폭주 가속화 우려
탄핵 반대에 담긴 정서 이해할 필요 있어

송평인 칼럼니스트

송평인 칼럼니스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유에 비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더 심각해 보인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에 비해 윤 대통령 탄핵 반대의 비율이 훨씬 높은 건 특이하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유는 거의 전적으로 최순실과 얽힌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윤 대통령 탄핵 사유는 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의 위헌적 입법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간신히 막았다. 그러나 탄핵 난동과 필수 예산 삭감까지 막을 수는 없었고 그것에 대한 대응이 비상계엄이었다.

비상계엄이 적절한 대응 수단이었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윤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해도 그가 탄핵될 일을 저지르게 된 근본 원인, 즉 민주당의 위헌적 행태는 그대로 남는다. 다시 말해 윤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핀셋으로 콕 집어 정치판 밖으로 내버린다고 해서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다른 점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것이 계기가 돼 대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 민주당은 현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향후 약 3년간 역대 어떤 정권도 누리지 못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간신히 막아낸 위헌적 입법이 모두 시행되고 그 이상의 위헌적 입법이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될 것이다. 어쩌면 3년 뒤의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은 민주당의 폭주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우려가 윤 대통령 탄핵 반대의 비율이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의 비율보다 훨씬 높게 나오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법적 판단의 틀에서는 친위 쿠데타 성격의 계엄에 대해 우선 탄핵으로 응징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지난 일에 대한 회고와 다가올 일에 대한 전망을 동시에 하면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된다. 법적 판단은 비상계엄 선포에서 해제까지 2시간 동안 벌어진 일에만 집중해서 이뤄지지만 상식적 판단은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진 일과 탄핵 이후에 이뤄질 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진다. 법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상식의 더 넓은 세계로 나와서 보면 탄핵 반대도 이해할 만한 면이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나도 꽤 비판적이었다. 졸속으로 이뤄진 대통령실 용산 이전부터 시작해 초급 간부 지원 급감을 불러온 병장 월급 200만 원, 부산 엑스포 유치 추진과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처참한 실패, 단순 무식한 의대 정원 증원까지 누구보다 혹독하게 그를 비판했다. 한편의 소극(笑劇) 같은 계엄을 보면서는 다른 건 차치하고 그의 무능함 때문에라도 하루빨리 군 통수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그를 당장 탄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고민은 남아 있다.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2개월 내에 대선을 치르는 것이 계엄 사태를 처리하는 가장 간명한 길로 보인다. 그러나 탄핵이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이면에서 정치를 결정적으로 퇴행시킬 우려가 있다면 상황은 그리 간명하지 않다. 탄핵 반대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실제로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없지 않다. 탄핵 사유에 근본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의 폭주를 계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밸런스를 회복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처벌은 형사재판으로도 가능하고 사실은 그게 진짜 처벌이다. 탄핵이란 본래 3심까지 가는 형사처벌에 앞서 단심으로 공직자를 파면하는 신속 절차일 뿐이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내란 혐의의 경우 형사재판은 진행된다. 윤 대통령이 탄핵으로 당장 파면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1987년 체제에 대한 개편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당장 개헌의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한 것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이대로는 내가 대통령’이라고 여길 이 대표가 개헌에 나설 이유가 없다. 윤 대통령은 헌재의 최후 진술에서 개헌 성사와 동시에 조기 하야를 약속했다. 그런 약속을 보장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보장할 방법이 있다면 개헌이란 해묵은 숙제를 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정도를 벗어나야 비로소 가능한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헌이 그런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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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니스트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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