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원 아래 오픈AI, 오라클과 5000억달러 규모 글로벌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주도하고 있는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그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첫째도 ASI(초인공지능), 둘째도 ASI, 셋째도 ASI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며 AI 혁명 시대 안정적인 기저에너지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 회장의 이 말은 기시감이 있다. 그는 6년여 전인 2019년 7월 방한해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했었다.
이 표현 자체도 사실 '원조'는 따로 있다. 손 회장의 2019년 7월 방한보다 4개월 앞서 같은 해 3월, 일본 경제산업성과 문부과학성은 공동으로 '수리과학 자본주의 시대'란 이름의 보고서를 펴내고 "AI, 빅데이터 혁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라고 적었다. 이 보고서는 2018년 영국 총리실이 발간한 리포트 '수학의 시대(The Era of Mathematics)'에서 나온 내용을 벤치마킹했다.
AI를 가동하는 기저 원리에는 행렬 벡터 등 선형대수, 미분방정식, 확률·통계학 등 수학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올 초 ‘가성비 생성형 AI’로 전 세계를 뒤흔든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가 수학자인 점은 우연이 아니다.
AI에이전트로 반도체 최적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흐릿한 지문은 어떻게 되살릴까. ‘정공법’으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인공지능(AI) 학습 모델을 써서 복원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전력 소모가 커 실제 수사 현장에선 사용하기 힘들다.
수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발견됐다. 6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한 국내 대학 수학과 연구팀은 손상된 지문 주변의 모양 데이터 등을 활용해 지워진 부분을 되살리는 AI 모델을 최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편미분방정식(PDM: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을 썼다. 편미분방정식은 다변수 함수와 해당 변수의 변화율을 함께 나타낸다. 시·공간에 따라 변하는 온도, 압력, 유체 흐름, 전자기장 등 다양한 물리 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한다. AI 최적화가 바로 이 편미분방정식에 따라 이뤄진다.
보험 등 금융권에서도 수학 기반 AI가 광범위하게 쓰인다. 보험 가입자들 대부분은 짧게는 수백, 길게는 수천 페이지 이상인 보험 약관을 읽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두꺼운 약관은 보험사 직원들에게도 골칫거리다. 관련 정책에 따라 약관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언더라이터(심사 담당자), 상품기획자 등은 약관의 많은 부분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AI 에이전트 전문 기업 애자일소다는 이 업무를 대신 해주는 AI 솔루션을 개발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써서 비정형 데이터를 가공하는 이른바 ‘추출·변환·적재(ETL)’솔루션을 만들었다. ML옵스(머신러닝을 운영체제에 접목하는 기술), AI 기반 OCR(광학문자인식), 자연어처리 기술 등을 활용했다. 환각 현상을 줄인 RAG(검색증강생성) 챗봇과도 결합시켰다.
강화학습(RL) 기술도 적용했다. 강화학습은 결과가 좋으면 보상을 더 주는 방식으로 훈련하는 AI 학습 기법을 말한다. 반려견 훈련과 마찬가지다. 애자일소다 관계자는 “강화학습 기반 AI 최적화는 한국의 경제 기반인 제조업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 소자 설계 최적화, 컨테이너 적재 및 하역 최적화, 선박 항로 최적화 등이다.
애자일소다의 강화학습 기술은 반도체 공정에서 소자 배치와 경로 최적화 문제를 해결했다. 코스닥 상장사 A사가 이 솔루션을 갖고 반도체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TSMC 공정에서 실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EDA(전자설계자동화), CAD(컴퓨터 기반 디자인) 툴 위에 그대로 올라가는 AI 에이전트 솔루션이다. 애자일소다는 이 기술을 확장해 반도체 소자 최적화를 하는 ‘칩앤소다’, 제조 설계 자동화 솔루션 ‘레드소다’를 개발하고 있다.
AI 발전 동력은 수학
애자일소다의 경쟁력은 수리과학에서 나온다. 애자일소다 관계자는 “제조업 공학 설계는 대체로 배치(placement)와 경로 설정(routing)의 문제로 요약된다”며 “이들 문제는 사용자 맞춤형 보상 함수 최적화, 메타 그래프를 통한 데이터 처리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자일소다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긴 시간 시행착오를 겪는 제조업 분야 보상함수 설계를 자동화하는 AI에이전트를 구현했다.
메타그래프는 복잡한 설계도면 사이 관계를 3차원 계층으로 구조화한 것이다. 설계를 고객 요청에 따라 그때그때 반영해 최적화하는 데 유용하다. 애자일소다의 AI 에이전트 솔루션은 점점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전력반도체나 FPGA(필드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 ‘주문형반도체’로 불리는 ASIC(애플리케이션 특화 집적회로) 설계에도 적용이 기대된다.
최대우 애자일소다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수리과학에 빠져 살던 한국 1세대 AI 기술자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미 럿거스대에서 통계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R언어를 국내 처음 소개했다. 또 국내 금융권 전반에 AI 강화학습을 적용한 솔루션을 전파했다. AX 전문기업이자 LG그룹의 IT서비스 업체인 LG CNS와도 협업하고 있다. 현신균 LG CNS 대표이사 사장은 최 대표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서 함께 공부했다.
반도체 EDA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시놉시스 전 최고기술책임자(CTO) 안툰 도믹, 산업 최적화 솔루션 세계 1위 기업 페어아이작(FICO) 전 부사장 지수 라이언이 애자일소다에 기술 자문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 프록터앤갬블(P&G), 존슨앤드존슨, HSBC, 네슬레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페어아이작의 솔루션으로 제조 및 물류 최적화를 한다. 애자일소다는 내년 코스닥 시장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3 days ago
4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