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세제 개편, 5년 전 데자뷔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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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칼럼] 세제 개편, 5년 전 데자뷔여야 한다

2020년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홍남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이 현행대로 가는 것에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홍두사미’라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사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했지만 직전 당정청 회의에서 ‘대주주 과세 기준 10억원 유지’라는 결론이 이미 내려진 후였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3억원 반대’ 국민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서며 들끓은 민심을 감안한 조치였다.

5년이 지난 지금, 금액만 다를 뿐 데자뷔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 올라온 ‘대주주 양도세 기준 하향 반대 청원’은 1주일 만에 14만 명을 넘어섰다. 증권거래세 인상,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 투자와 직결된 이번 세제 개편안에 1400만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14억원 시대에 이들에게 주식 투자는 최선의 재테크 수단이자 ‘민생’ 그 자체다. 이런 동학개미들에게 “이래도 증시는 안 무너진다”는 진성준 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의 발언은 공분만 키웠다.

증권거래세 인상에는 어느 정도 명분이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이유로 거래세를 낮춘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 금투세를 폐지한 이상 되돌리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대주주 대상 확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연말 기준 50억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대주주’로 분류해 양도차익에 20~25%의 세금을 부과한다. 이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낮추면 대상자는 4000여 명에서 1만3000여 명으로 늘어난다.

민주당은 이를 소수 ‘큰손들’만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말 세금을 피하기 위해 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 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 팔면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결국 소액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이런 부작용을 외면한 채, 전 정부의 대주주 기준 완화를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정상화’하겠다는 것은 투자자들을 현혹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평균 배당성향은 26.0%로, 미국(42.4%) 일본(36.0%) 중국(31.3%) 등 주요국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기업 대주주들이 이처럼 배당에 소극적인 원인은 배당소득 최고세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2000만원을 초과하는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다른 소득과 합산해 최고 45%의 종합소득세를 내야한다. 여당 내에서도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하고 최고세율을 25%로 낮추자는 제안이 있었다. 세율을 낮춰도 배당성향이 높아지면 세수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부자 감세’라는 당내 반발에 밀려 결국 최고세율은 35%로 정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국민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중간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하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세제 개편안은 이 대통령이 표방한 ‘코스피 5000 시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과의 소통 부족은 물론 부자 감세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국민 목소리를 외면하는 행태는 결국 거센 조세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최근 현행 50억원과 10억원 사이인 ‘30억원 이상’도 검토 대상이라는데, 대주주 양도세라는 세목에 부합한 ‘대주주’의 기준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다. 30억원 이상 보유한 투자자에게 금투세를 걷겠다는 것과 진배없고, 연말이면 대규모 물량 출회도 반복될 것이다. 명분도 없고 실익도 크지 않다면, 대주주 기준은 현행대로 유지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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