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덴마크 미술 거장 카를 블로흐가 그린 ‘삼손과 블레셋인’(1863년·사진)은 성경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덴마크 시골의 일상을 주로 그리던 블로흐는 1859년부터 7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며 역사화 장르를 발전시켰는데, 이 그림 역시 이탈리아에서 그렸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전사이자 판관이다.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힘을 과용했다. 길에서 만난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이고, 화를 다스리지 못해 무고한 블레셋(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거나 농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또 자신을 공격하는 블레셋 병력 1000명을 살해했다. 그러다 블레셋 여자 델릴라에게 빠져 그만 힘의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델릴라는 삼손이 잠든 사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그를 밀고했다. 힘이 빠진 삼손은 블레셋군에 체포돼 두 눈이 뽑힌 후 연자방아를 돌리는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화가는 바로 이 장면을 포착했다. 극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를 활용해 삼손의 고통과 절망을 강조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삼손의 얼굴과 조롱하는 블레셋인들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삼손은 초인적인 힘을 신에게 받았지만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삼손이 회개하면서 반전이 일어나지만 화가가 주목한 건 그가 적에게 붙잡혀 조롱받는 장면이다. 자신의 교만과 오만함으로 힘을 잃고 조롱과 모욕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손의 최대 적은 블레셋인도, 델릴라도 아닌 자신의 입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밀을 발설한 그 입 때문에 스스로 파멸을 자초했으니까.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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