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세상. 바야흐로 분열의 시대다. 최근 한국은 계엄령을 선포했던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둘로 나뉘었다.
1월 열린 윤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가던 필자를 한 중년 남성이 막아섰다. 남성은 사진 취재용 사다리에 부착된 회사 스티커를 보고 다짜고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가 보도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넘어졌다. 청바지 무릎 부분에 피가 스며들었다. 뒤에 있던 타사 기자가 괜찮냐고 물었다. 기자라는 이유로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그날 반탄(反탄핵) 시위대는 법원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법원 뒤쪽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 월담을 시도하는 시위대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를 찍던 필자의 카메라 플래시에 담 너머 누군가가 외쳤다. “야, 너 어디 기자야!”뒤늦게 법원 외곽에서 취재하던 영상기자들이 시위대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위대는 현장을 취재하던 영상기자의 소속을 확인한 뒤 발로 밟거나 뺨을 때렸다. 소수를 향한 다수의 폭력이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자행됐다. 무릎 부상으로 끝난 필자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됐을 때 시위대는 법원에 난입해 점거를 시도했다. 이를 취재하던 후배 사진기자는 신분을 확인하는 시위대에게 멱살을 잡혔다. 후배는 다른 건물 옥상으로 피해서 취재를 이어갔다.
취재진에 대한 공격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미국에서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의사당에 난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승리를 선언하려던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선언에 고무된 지지자들이 폭도로 돌변해 의회로 쳐들어갔다. 근처에서 취재를 준비하던 영상기자들은 시민들의 위협에 조명과 삼각대, 카메라 등을 현장에 둔 채 급히 대피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당시 수만 달러에 이르는 장비들이 시위대에 의해 파손되거나 분실됐다.
최근 이런 시위대의 과격 행동들은 주로 극우 집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자를 향한 폭력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 집회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본보 사진기자가 일부 극좌 성향의 시위대에게 폭행당해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본사 건물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다. 지금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징되는 촛불 집회의 어두운 면이다.사진·영상기자들은 집회 현장에서 늘 눈에 띈다. 장비를 들고 무대 위나 사다리에 올라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관찰자’적 태도가 누군가에겐 ‘강 건너 불구경’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종종 화풀이 대상이 되곤 한다. 기자들도 유가족의 울분이나 신뢰도 하락에 따른 비난은 감수하며 일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념과 다른 보도를 한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그 어떤 상황에도 용납될 수 없다.이런 폭력의 근본적 원인은 정치의 양극화에 있다. 극단적으로 갈린 양 진영은 언론 보도가 자신들의 관점과 다를 때 불신과 분노를 드러내며,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선호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불리한 사실은 허위정보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만약 언론이 이러한 압력에 굴복해 수용자들의 기호에 맞춘 보도에 머문다면 특정 정치적 견해나 이념만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의 다양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진실보다 감정과 선동이 앞서는 비이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위험이 있다.
25일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종변론기일이 종료돼 이제 선고만을 앞뒀다. 2017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선고된 날 태극기는 흉기로 돌변했다. 대통령의 파면에 격분한 지지자들의 격렬한 시위 과정에서 사진기자를 포함해 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월에 예정된 헌재의 선고 결과에 따라 또다시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최일선에서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취재활동을 하는 사진기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에는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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