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한국이 (미국에 비해) 4배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방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취임 후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의미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4월 2일로 예고한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건 아무 근거가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양국 간 거래 품목의 99% 이상이 무관세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율만이 아니라 비관세 장벽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부가가치세, 환율, 규제 등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비와 협상 전략 마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 지원법 폐지 방침도 분명히 했다. 이 법을 믿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얘기다. 최대 수조원의 보조금 지급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위기’와 동시에 ‘기회’도 보여줬다. 미국의 조선업 부활을 위해 백악관에 조선 사무국을 두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먼저 협력을 요청한 데서 보듯 K조선의 경쟁력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조선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력이 필수다. 알래스카주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한국, 일본 등이 수조달러를 투자해 참여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액수가 부풀려지긴 했지만, 우리 정부도 관심을 가진 사업인 만큼 한·미·일 협력의 상징적 프로젝트로 추진해볼 만하다.
트럼프는 철저한 사업가이자 협상가다. 관세와 안보를 무기로 휘두르며 거칠게 국제관계와 글로벌 교역의 룰을 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대는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철저하게 그의 문법에 맞춰주는 노련한 협상으로 국익을 지키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기회를 잡을지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