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쟁터 된 헌재 게시판, 주유소 폐쇄… 극단적 분열의 단면

4 days ago 5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이 경찰 차벽으로 둘러져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1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이 경찰 차벽으로 둘러져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된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찬반 대립이 점점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탄핵 찬반 단체들은 각각 헌재의 탄핵 선고일까지 매일 집회를 열겠다고 공언하며 헌재를 압박하고 나섰다. 양 진영에선 “헌재가 (탄핵 기각 말고) 딴짓하면 한칼에 날려버린다” “(대통령을 풀어주는) 해괴한 잔꾀를 부린 검찰도 내란 공범” 등 격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헌재의 인터넷 게시판은 찬반 여론전의 또 다른 전쟁터가 됐다. 탄핵과 관련한 의견 글이 9일 16만 개, 10일 23만 개 이상 게시되는 등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10일 저녁 글을 등록하려면 ‘3900명 대기 중’이란 메시지가 뜰 정도다. “국민 불안을 없애려면 조속한 탄핵만이 답이다” “내란죄 빼고 소추했으니 각하해야 한다” 등 찬반 의견이 엇비슷한 비율로 경쟁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탄핵 반대 지지자들이 자동 댓글 달기(매크로)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건 단순 의견 개진을 넘어 헌재 판결에 불복하며 폭력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경찰이 당일 헌재 주변 100m 이내에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인근 주유소를 폐쇄하고, 아파트 공사장 발파 작업을 불허하는 조치까지 취하기로 했다. 시위대가 유류와 폭발물에 접근했다가 예기치 않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미리 막겠다는 조치다.

이렇듯 12·3 비상계엄의 신속한 해제 등 민주주의 복원력을 보였던 우리 사회는 탄핵 결정을 앞두고 다시 기로에 서게 됐다. 탄핵 찬반 시위대는 상대방을 향해 적의와 저주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헌재 재판관을 향한 위협적 언사도 횡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석방된 뒤에도 승복과 통합 메시지를 내놓기는커녕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 등 ‘관저 정치’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풀어준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30번째 탄핵 카드를 꺼내들 기세다.

비상계엄의 위헌·불법성을 따지는 헌재의 탄핵 결론이 선포될 때 우리 정치와 사회는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과정을 전 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볼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헌재 결정이 어느 쪽이든 순탄한 마무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 정치인들은 그동안 전체 국민의 대표자들이라기보다는 한쪽 세력의 대리인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탄핵 선고 직후까지 1, 2주간은 어느 때보다 안정적 상황관리가 중요해졌다. 여야는 자신들이 통합의 정치에 적임자라는 점을 입증해야 할 때가 왔다. 유권자들이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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