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호봉제를 도입한 사업장 비율이 15년 만에 증가했다는 한경의 단독보도(3월 11일자 A1, 3면)다. 호봉제 사업장이 22만8600여 개로 1만 곳 늘면서 비율 역시 12.8%로 0.1%포인트 높아졌다. 변화를 거부하는 노동계와 원활한 노사 협상을 바라는 사업주 사이에서 빚어진 퇴행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제도로, 기업의 인력 효율성을 낮추고 인건비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호봉제가 직무급제로 전환돼야 청년 채용을 늘리고 중장년층을 계속 고용할 여력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은 호봉제가 늘고 직무급제가 줄었으니, 노동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용시장엔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11만7000명으로 역대 2월 기준 가장 많았다. 건설업 신청자가 43.5%(전년 동월 대비) 급증하면서 전체 신청자가 25.1% 늘어났다. 구직급여 지급액 역시 1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현대차·기아 노조가 ‘정년퇴직 후 계약직 재고용’에 불만을 표하며 ‘온전한 계속 고용’을 주장하는 등 노동계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
한국은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올해 노동 분야 경제자유 순위에서 184개국 중 100위로, 전년보다 무려 13계단 하락했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해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개혁과 노사관계 선진화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고용시장의 유연성 증대, 규제 완화 등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개선부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막혀 있다.
어제 여론조사(리얼미터) 결과 반도체산업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허용을 찬성(58%)하는 의견이 반대(27%)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절반이 찬성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예외 반대를 고수하며 파업을 조장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에 집착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노동개혁을 노동계 표심 관리 차원에서 바라보는 정치권의 각성과 변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