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은 대출 규제 방안은 소득 수준, 아파트 가격에 관계없이 주담대 한도를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의 절반 수준인 6억 원으로 묶는 게 핵심이다.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사람은 아예 주담대가 금지된다. 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에겐 6개월 내 입주를 의무화해 실수요가 아닌 투자 목적의 주택 구매를 차단했다. 하반기부터 금융회사의 가계대출 총량은 절반으로 줄고, 디딤돌대출·보금자리론 등 저리의 정책대출도 25% 축소돼 대출 문턱이 높아진다. 정부는 필요하면 규제 지역도 추가로 지정하겠다고 한다.
이번 대책은 집값 상승을 주도해 온 강남 3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지의 고가 주택을 겨냥했다. 상당한 현금 부자가 아니라면, 6억 원 이하의 대출을 받는 정도로는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구매하긴 어렵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5억 원 이상 주택의 주담대를 금지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집값·소득 수준을 가리지 않고 주담대의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건 초유의 일이다. 다음 달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과 맞물려 부동산 과열이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새 정부가 출범 23일 만에 황급히 대책을 내놓은 건 아파트값 불안이 위험 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6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한국은행은 현재의 상승세가 1년간 유지될 경우 서울 전체 아파트값은 10%, 강남 3구는 30% 오를 것으로 추산했다. 곧 수십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풀리고,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인하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단기간에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대출 규제로 수요를 억누르는 것은 정부가 집값을 잡는 몇 안 되는 카드 중 하나다.대출 규제는 주택 수요자들의 ‘패닉 바잉’을 잠시 멈출 순 있어도 근본 대책은 될 수 없다. 문 정부 때는 강력한 금융, 세금 규제책을 낼 때마다 집값이 잠깐 주춤했다가 금세 재발해 더 많이 상승하는 일이 반복됐다. 대출을 틀어막고, 세금을 올리더라도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싶은 아파트가 부족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한 수요 억제책으로 시간을 번 만큼 이제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현실화, 3기 신도시의 신속 추진 등 공급 확대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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