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전자, TSMC 등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외국 반도체회사의 지분 확보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 등장해 “바이든 행정부 때 약속한 보조금을 지급하되 반대급부로 지분을 얻어내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러트닉 장관이 삼성전자와 TSMC 지분 취득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종합해 보면 미국 정부가 칩스법으로 보조금을 받는 국내외 모든 반도체회사의 지분 확보를 추진 중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때 트럼프 후보가 ‘반도체 보조금은 10센트도 줄 필요 없다’고 할 때부터 우려한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은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이 시혜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억지다. 양국이 상호 이익을 조율한 협상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보조금을 받는 대신 중국 등 ‘적성국’에 대한 투자 제한이라는 미국 요구를 수용하고 국내 투자·고용 감소도 감수했다. 그 결과 미국은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경제안보 강화 등의 핵심 이익을 지켜냈다.
러트닉 장관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하지만 어떤 경우든 외국 정부의 민간기업 지분 확보는 부적절하다. 인텔, 마이크론 같은 자국 반도체기업은 국유화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지만 외국 기업 경영 관여는 그 자체로 선을 넘는 일이다. 인텔처럼 의결권 없는 지분으로 출발하더라도 후일 어떻게 변질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본사 지분이 아니라 미국 내 들어설 공장 지분 확보여도 마찬가지다. 지사를 통해 본사 의사결정에 개입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지급 약속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현대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의 외국 민간기업 지분 확보 추진은 글로벌 질서가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 기업은 완결된 국가 간 거래조차 손바닥 뒤집듯 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에서 사투 중이다. 이런 판국에 남발되는 규제 입법과 기업 옥죄기 정책은 자승자박과 다름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