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1%대 초중반에 머무르던 소비자물가는 비상계엄이 있던 12월에 1.9%로 반등하더니 지난달 2.2%를 기록하며 5개월 만에 2%대에 진입했다. 환율과 국제유가가 동시에 올라 석유류가 7.3% 급등했고, 작황이 나쁜 채소도 4.4%나 올랐다. 고물가는 불안한 정국과 맞물려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작년 소매판매액은 신용카드 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뒷걸음쳤다. 그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가 늘면서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나 홀로 사장’ 수는 6년 만에 감소했다.
문제는 위기를 탈출할 기회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커지자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 인하를 멈췄다. 한국은행도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더 커져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까 봐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다. 금리를 내리자니 수입물가는 오르고 환율 마지노선 1500원이 위태로워질까 걱정이고, 금리를 유지하자니 내수 침체를 외면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환율 방어 비용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방어선인 4000억 달러는 간신히 지켰지만 한 달 새 외환보유액은 46억 달러 줄었다. 격화하는 관세전쟁으로 인해 올해 수출과 무역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이 큰 만큼 감소한 외환보유액을 채워 넣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이렇게 대외 경제 변수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선 재정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에 동의한다면서도 상대편 책임을 따지고, 갖가지 조건을 내걸어 시간만 끌고 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추경 편성, 국내외 기업 투자를 끌어들여 환율을 안정시킬 규제 완화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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