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한국 노동시장의 경제 자유 수준에 대해 낙제점을 매겼다. 재단이 발표한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전체 12개 평가 항목 중 노동시장 부문에서 56.4점을 얻어, 평가 대상 184개국 가운데 100위에 그쳤다. 전년 87위에서 13계단이나 떨어졌다. ‘완전 자유’부터 ‘억압’까지 5단계로 나뉜 등급은 끝에서 두 번째인 ‘부자유(Mostly Unfree)’로 분류됐다.
경제자유지수 평가 중 노동시장 부문은 근로시간, 채용, 해고 등에 대한 규제가 경직돼 있을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다. 한국은 2005년 해당 부문이 새로 생긴 이후 줄곧 ‘부자유’ 또는 ‘억압’ 등급을 받아 왔다. 한국 경제 전체로는 종합 순위 17위로 ‘거의 자유’ 등급인데, 노동시장의 후진성이 평균을 깎아 먹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적 규제가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저성장의 굴레에 빠진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시킬 해법으로 꼽히는 노동개혁은 사실 정답이 공개된 시험지와 같다. 노동시장 및 근로시간의 유연성 제고,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 등 과제가 명확하다. 매 정부마다 강조해온 단골 이슈였고,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 보고서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현 정부도 어설프게 노동개혁을 추진하다가 ‘주 69시간 논란’에 휘말려 주춤한 뒤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탄핵 정국의 혼란 속에 당장 전면적인 노동개혁이 힘들다면 우선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근로 예외 규정을 포함시키는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혁신 속도가 생명인 일부 업종에서, 그것도 연구개발(R&D) 직군의 고연봉자만 대상으로, 여기에 노사 합의라는 조건을 걸고라도 필요할 때 몰아서 일할 수 없다면 어느 세월에 광범위한 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노동개혁을 특정 정부나 진영의 과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 식어가는 한국 경제의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해 꺼뜨려선 안 되는 불씨로 봐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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