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전년보다 10계단 하락하면서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을 받아 전년의 8.09점보다 크게 떨어졌다. 7.75점은 2006년 EIU가 지수 산출을 시작한 이래 한국이 받은 가장 낮은 점수다. 세계 순위도 167개국 중 22위에서 32위로 내려갔다. EIU는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로 위기를 겪으면서 ‘완전한 민주주의’ 기준(8점) 아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탄핵 정국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매겨진 역대 최악의 민주주의 성적표는 예사롭지 않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정 리더십 부재에 따른 국내적 혼란과 갈등 격화, 국제 신인도 하락은 이미 국민 모두가 깊이 체감하고 있는 터지만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입은 피해가 공신력 있는 기관의 평가를 통해 점수·순위의 하락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한번 떨어진 국제적 평판을 만회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당장 그 추락이 다른 분야의 평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허투루 넘겨버릴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계엄 후폭풍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관저 공방전과 법원 폭력 난동 등 새해 들어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들은 이번 EIU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조만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예측 불허다. EIU도 보고서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에 따른 여파는 국회에서,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을 고조시켰고 2025년에도 지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간 한국의 정치적 격동은 매번 세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해외 토픽감이었다. 얼마 뒤 헌재 주변에서 벌어질 군중 간 대결도 세계는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명분도 요건도 부족했던 비상계엄은 이미 국민 가슴에 깊은 내상을 남겼고 국격 추락이란 결과도 낳았다. 그 실책을 바로잡기 위한 더딘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은 커졌지만 그것이 민주주의 정상화를 위한 일시적 진통이 될지언정 더 큰 분열로 ‘복구 불가’ 판정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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