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의 ‘우클릭’ 기조에 발맞춰 더불어민주당 집권플랜본부가 야심 찬 ‘성장 우선’ 전략을 내놨다. “향후 5년이 성장 골든타임”이라며 인공지능(AI)·문화·안보 세 축을 동력으로 5년 내 3%대, 10년 내 4%대 성장률 복귀를 공약했다.
반기업·반시장으로 치닫던 야당이 모처럼 성장 담론을 제시했지만 한쪽에선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대한민국 성장전략’이라며 거창한 구상을 발표한 지 불과 서너 시간 뒤 당 정책위원회는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주 52시간제 예외조항’이 빠진 반도체특별법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삼성전자급 헥토콘(기업가치 100조원 이상) 6개를 키워내겠다는 장담이 무색할 정도다.
당내 논란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불과 사흘 전 반도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 공감을 표했다. 당내에서는 “주 52시간제를 고쳐야 한국에서도 딥시크가 탄생할 것”(박지원 의원)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앙꼬 없는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강행하겠다니, 거대 노조 눈치보기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 산업으로 ‘주 52시간제 예외’를 관철해야 할 때다. 조선업계도 어제 국민의힘 정책간담회에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건의했다. 납기가 중요한 업종 특성상 지금처럼 경직적 노동 규제 아래에서는 ‘트럼프발 조선 호황’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호소다. AI 시대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모든 산업이 비슷한 사정이다.
노조는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자 생명·안전을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이미 장시간 근로국이 아니다. 60시간 이상 근로자 비중(2022년 기준)은 2.7~3.2%로 OECD 평균 3.8%를 밑돈다. 선진국은 모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미국), 고도 프로페셔널(일본), 근로시간 계약제(독일), 0시간 근로계약(영국) 같은 유연근무제를 운영 중이다. 미국 엔비디아 연구원은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대만 TSMC 엔지니어도 24시간 2교대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만 오후 6시면 R&D 장비 전원이 자동으로 꺼진다. 남들 다하는 근로시간 유연화도 하지 못하면서 무슨 수단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