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주 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에서 자유무역협정(FTA) 등 모든 경제협정 재검토를 공식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당일 행정명령에서 강조한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이 자칫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으로 치달을까 두렵다.
USTR은 보고서에서 관세를 ‘공공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정당한 도구’로 규정했다. 캐나나, 멕시코, 중국 등과 대치 중인 관세전쟁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한국으로도 곧 확산할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보고서는 또 트럼프 1기 당시 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주요 성과로 언급했지만 같은 시기에 개정한 한·미 FTA는 긍정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산 육류·가금류 수출 장애, 한국의 유전자변형식품(GMO) 승인 절차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담겼다. 한·미 FTA가 사정권에 들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보고서는 호혜적인 글로벌 분업구조를 인정하지 않고 일방 폭주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강조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에서 훔쳐 간 반도체산업이 대부분 대만에 가 있고, 한국으로도 조금 갔다’던 며칠 전 트럼프의 직격과 일맥상통한다.
자유무역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것은 트럼프 2기 들어서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1기 때는 물론이고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도 공급망 재편과 국가 안보를 앞세운 보호무역 조치가 잇따랐다. 그 결과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역 비중이 금융위기 이전 60%대에서 최근 50%대로 낮아졌다. 시나브로 막을 내리는 자유무역은 무역 부진을 넘어 세계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을 불러올 것이다. 기업 생산 방식과 공급망 재편 가속화는 물론이고 가까스로 진정된 세계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금융시장에 대격변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새판짜기가 본격화한 마당인데도 한국의 대응은 즉흥적이고 관성적이다. 분야별 회의체를 꾸리거나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로 환심을 사자는 식의 피상적 대책을 맴돈다. 거대 변화에 맞설 근본 해법은 규제 완화를 통한 본질적 경쟁력 제고 외에는 없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직무급제 등 노동 선진화 조치는 물론이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에 대한 전폭 지원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