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이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과 국회 소추위원인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의 최종 진술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계엄의 정당성과 탄핵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계엄은 야당의 잇따른 탄핵안 처리, 입법 폭주에 대한 통치행위이고,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국민 안전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반면 국회 측은 헌정질서 파괴 등 계엄의 위헌성을 집중 제기했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어두운 과거가 반복되지 않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 양측의 법리 공방은 끝났고, 헌재의 심판 결정만 남았다. 변수가 없는 한 약 2주 후에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시기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라는 불안은 진작부터 엄습해 온다.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 이후 벌어진 극도의 혼란과 갈등 양상을 보면 말 그대로 ‘시계 제로’다. 주말마다 경찰 차벽을 두고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는 분단 상황과 같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악마’ ‘만행’ ‘좀비’ ‘미치광이’ ‘발광’ 같은 온갖 증오의 말을 쏟아내며 서로를 악마화하는 것은 단순 기싸움을 넘어선다.
광장의 흥분이 극단의 대결과 충돌로 흐르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헌재의 역할이 막중하다. 헌재의 결정이 논란 종결이 아니라 불복과 갈등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 헌재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법적 논리와 정당성에 한 치의 의심을 남겨선 안 된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헌재가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차적 정당성과 불공정 시비를 낳은 것은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의 3분 발언 기회 요청을 차단하고, 핵심 증인 신문에 초시계까지 동원한 것은 지나쳤다. 탄핵 심판의 핵심인 내란죄 철회 권유 및 재판관들의 이해 충돌, 이념 편향성 논란도 일었다.
판결로 확정된 사실이 아닌데도 검찰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하고, 수사 중인 사건 기록의 서류 송부·촉탁을 수용한 것은 중립성 위반이란 지적이다. 개정 형사소송법에는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검찰 진술은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헌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헌재와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기라도 한다면 그 혼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헌재는 남은 평의에서라도 흠결을 보완해 후환을 남기지 말길 바란다. 헌정 질서의 보루인 헌재가 공정·신뢰성이 훼손된다면 법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다.
걱정스럽긴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장외 집회에 가세해 의도적으로 탄핵 찬·반 편을 가르는 양상마저 보인다. 자칫 국론 분열을 넘어 극단의 진영 대결로 우리 사회가 버텨내기 힘들 정도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내외 엄중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치권이 갈등을 조장할 때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관세 폭탄 등 잇단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고, 중국은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서 한국을 추월한 마당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정국이 불안해도 최소한 국정은 돌아가게 해야 마땅하다. 기왕 논의를 시작한 국민연금, 반도체 지원법 등 다급한 과제를 나라 미래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 판에 야당이 상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등 반시장 입법 폭주 사이클을 돌리며 정국을 다시 파탄으로 몰아간다면 ‘먹사니즘’ ‘잘사니즘’의 정면 배반이다. 윤 대통령도 “계엄 선포에 따른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 만큼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바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안보 상황도 불확실성투성이다. 미국의 중재로 급물살을 타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끝난다면 안보 정세의 추는 한반도로 옮겨올 것이다. 정교한 대비가 필요한데, 공백인 안보 수장 임명 등 야당도 협조할 건 해야 한다. 국민도 일상에 매진하면서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모두의 자제가 더없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