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열린 10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체포 대상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동향 파악을 위해 위치 확인 요청을 한 것”이라며 ‘체포 지시’가 아닌 ‘동향 파악’이라고 강변했다. 홍 전 차장이 ‘주요 인사 체포 명단’ 메모 실물을 가져와 “명단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했지만 윤 대통령은 “잘 모르는 사람(여 전 사령관) 부탁을 체포 지시로 엮었다”며 “탄핵 공작”이라고 했다. 끝까지 본인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처음 헌재에 출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통상의 국무회의가 아니었고, 형식적 절차적 흠결이 있었다는 건 하나의 팩트”라고 했고, 국무위원들이 “모두 걱정하고 만류했다”고 증언했다. ‘찬성하는 국무위원도 있었느냐’는 질문엔 “제 기억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계엄 선포의 핵심적 절차인 국무회의 심의 과정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조 청장은 대부분 질문에 답을 피했지만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 사실대로 진술·열람한 뒤 서명했느냐’는 질문에는 “네”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6통의 닦달 전화를 받았다’는 등 검찰 진술 내용에 대해 공판을 이유로 직접 증언을 거부하면서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이번 탄핵심판은 40여 년 만의 퇴행적 계엄 선포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나 법률 위배’인지를 가리는 자리였다. 이날까지 10차례의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은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 “의원이 아닌 요원” “호수 위 달그림자를 쫓는 느낌”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계엄의 실체보다는 재판의 절차적 문제를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일종의 여론전을 펼쳤다는 지적이 많다.하지만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외에도 국회에 출동했던 수방사 제1경비단장, 1공수여단 소속 대대장이 헌재와 검찰에서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부하들이 다 안다”고도 했다. 정치인 체포에 관해선 당시 방첩사 요원들 단체대화방에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을 체포해 구금시설로 이동한다”는 명령이 올라왔다고 한다.
두 달여 전 군용 헬기와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많은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국격이 추락했고 경제가 출렁거렸다. 이런 사태를 불러온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가리는 탄핵심판이다. 또다시 이런 사태가 빚어져선 안 된다는 차원에서 향후 헌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역사적 심판이기도 하다. 정치적 압력이나 재판관 개인에 대한 신변상의 위협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선 안 된다. 헌재는 오직 헌법과 법률, 증거에 입각해서 공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결정이 나와도 모두 승복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는 헌정 질서를 지금이라도 바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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