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5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최후진술에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 등 ‘87 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취임 후 개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나 로드맵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한 번도 없는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정에서 임기 단축 개헌 카드를 꺼낸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3월 중순 예상되는 헌재의 선고에 따라 파면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헌재에 탄핵 기각의 명분을 제공하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계엄 사태를 거치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은 사실이다. 87년 헌법은 37년 동안 달라진 한국사회의 오늘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한 현행 헌법은 예외 없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최근 각계 원로와 학자, 다수의 여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 이슈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진정성에 의문이 들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할 계획이었다”고 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던 지난해 11월 초 2시간 가까이 대국민담화를 겸한 기자회견을 했지만 개헌의 뜻을 내비친 적조차 없다. 2016년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지지율이 하락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하던 도중 ‘임기 내 개헌 가능하다’고 불쑥 말하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탄핵 판단은 그 자체로 재판관들의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이뤄질 일이다. 임기 단축 개헌과 같은 정치적 제안을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설령 현직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대통령의 개헌 카드를 받아 논의할지도 극히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회 다수당인 야당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았고, 아예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며 비상계엄까지 선포했다. 그래 놓고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인 개헌 논의를 하자고 하니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이다.국민들이 최후진술에서 기대한 것은 개헌과 같은 중대한 이슈를 승부수 던지듯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된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 인정과 진솔한 사과였고, 국민 통합의 메시지였다. 승복의 메시지조차 없었던 대통령이 꺼낸 “개헌과 정치개혁을 논의하면 국민이 통합된다”는 주장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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