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상 당국은 ‘10억 달러’가 투자 하한선이 아니라 “투자를 많이 해달라”는 독려 차원으로 해석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1억 달러를 들여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의 투자 성과를 강조하는 가운데 10억 달러를 언급한 것은 ‘그 정도론 부족하다’는 미국 측의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 측은 투자를 약속할 경우 1년 내 착공 등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도 했다. ‘2년 연속 대미 투자 1위’라는 사실을 강조해 통상 압력을 줄이고자 노력해 온 한국으로선 고민이 많아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여간 미국은 모든 국제관계를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를 정도다. “친구(동맹)와 적들이 미국을 이용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미국 앞에서 ‘피로 맺어진 70년 동맹’ 같은 감정적인 호소는 더 이상 먹히기 어렵다.
그간 한국은 지난 8년간 1600억 달러 이상을 미국 제조업에 투자했고, 8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든 사실을 강조했다. 조선, 에너지, 원자력,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등 양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도 제시했다. 필요한 전략이지만 미국의 마음을 흔들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빅 프로젝트’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미국발 관세 폭풍이 거센데도 아직까지 한국의 대책은 무역금융 확대 등의 수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미국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해서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확실히 받아내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비즈니스를 앞세운 미국과 상대하려면 당분간 과거의 미국은 철저하게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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