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한경협을 만난 건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수권정당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친기업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을 잇달아 만나 의견을 청취한 데 이어 그간 민주당이 ‘재벌들의 모임’으로 낙인찍고 피해 온 한경협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번 회동에서 류진 한경협 회장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민주당의 상법 개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법 개정이 자본시장을 투명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것이라며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반도체산업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규정을 반도체특별법에 포함시켜 처리해 달라는 한경협의 요청도 이 대표는 “현행 제도 내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표가 “기업 주도 성장”을 강조하면서 기업계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 이 대표가 배임죄 폐지 검토 의사를 밝힌 건 주목할 만하다. 상법 개정으로 가장 우려되는 게 이사들의 경영판단에 대한 소액주주, 외국계 펀드들의 배임죄 소송 남발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의 배임죄는 형법 외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법 등에도 규정이 있어 법체계를 전체적으로 손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상법 개정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 극심한 내수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은 기업의 혁신성, 미래 성장동력 약화이지 ‘주주’란 표현이 상법에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이와 별도로 이 대표가 언급한 배임죄 폐지 문제는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는 법체계의 해묵은 숙제인 만큼 이번 기회에 구체적인 액션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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