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혼돈을 동력으로, '줌 아웃' 전략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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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면 숨이 막힌다는 경영자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세계적인 위기관리 전문회사 AON은 매년 글로벌 기업 임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리스크 서베이를 진행한다. 2000년 이전에는 비즈니스 리스크 10위 안에 비시장 환경 관련 항목이 없었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이 항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2020년 코로나19 이후에는 정책·규제환경뿐 아니라 기후변화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포함해 비시장 전략과 관련한 리스크가 10위 안에 5개나 포함됐다. 이제는 VUCA(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라는 단어가 각종 글로벌 리포트에 흔히 등장한다. 심지어 ‘총체적 혼돈’이라는 표현마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한 달 사이에 100건이 넘는 행정 조치를 쏟아내면서 글로벌 경제의 VUCA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국내 정세 역시 극심한 혼돈 상태다. 이럴 때 기업들은 절치부심하며 때를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ESG 경영으로 시장·비시장 통합

[비즈니스 인사이트] 혼돈을 동력으로, '줌 아웃' 전략의 효과

혼돈을 동력으로 바꿔 성공한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인텔의 파운드리 부문 인수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주가가 폭등한 TSMC를 보자.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지자 TSMC는 대만 정부와 주요 수출입 국가의 규제당국을 긴밀히 조율해 공급 우선순위를 재배치했다. 그 결과 자동차·가전·정보기술(IT)업계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글로벌 1위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2021년과 2022년 대만 남부의 심각한 가뭄 때는 ‘TSMC가 물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판이 커지자 회사는 단순 보상금이나 홍보 캠페인을 넘어 재생수 공정 확대와 지역 식수 시설 지원을 결합한 지역 생태계를 위한 적극적 투자에 나섰다.

이런 비시장 전략 경영 덕분에 TSMC는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국가 산업 기반을 뒷받침하는 ‘필수 파트너’로 인정받으면서 실적과 평판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 핵심에는 시장 전략적 투자 외에 비시장 환경 내 이해관계자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적극적인 비시장 전략으로 활용하는 등 ‘줌 아웃’ 전략으로 전체를 보고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을 통합하는 시스템스 접근법이 있었다.

◇위기 속 기회 만든 통합 협업 모델

우리나라처럼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국가에서도 주목할 사례들이 있다. 브라질 항공우주회사 엠브라에르, 폴란드 게임 개발사 CD프로젝트다. 엠브라에르는 정부·민간·해외항공사 사이 통상 갈등을 맞닥뜨렸지만 정부와의 공동 연구개발(R&D), 지역 일자리 창출, 항공 보안규정 강화를 하나의 협업 모델로 묶어냈다. 회사는 줌 아웃 전략과 통합적인 시스템스 접근법을 통해 브라질의 핵심 수출산업으로 성장했다. CD프로젝트는 표현의 자유와 보수적 규제가 충돌할 때 폴란드 정부와 게임산업 육성 정책을 함께 설계해 이 위기를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기회로 바꿨다.

우리는 종종 위기 상황에서 “언제 이 고난이 지나갈까?”라고 바라지만 사실 경영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은 위기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기업들의 줌 아웃 전략과 시스템스 접근법에서 나왔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비시장 환경의 대격변 속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방법은 위기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되 줌 아웃 전략으로 비시장 환경의 패턴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시스템스 접근법으로 이질적 이해관계를 새로운 길로 통합해내는 데 있다.

◇규제·정치 변화 속 협력 메커니즘 필요

앞으로도 시장은 더욱 복잡한 규제 환경, 급변하는 정치 지형, 그리고 폭넓은 시민사회의 요구에 노출될 것이다. 이는 기업에 큰 위험이자 동시에 창조적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이제는 시장 논리만 바라보는 ‘반쪽짜리’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지역사회와 협력 메커니즘을 가동하고 사회·환경적 가치를 기업 운영 전반에 내재화하는 비시장 전략 경영이 필수 역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줌 아웃 전략으로 전체를 조망하고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을 통합해내는 시스템스 접근법,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스(공공관계)가 필요하다.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스는 시장과 비시장 환경에 기반해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 최적의 시나리오에 맞춰 근거 기반의 정책 제안을 준비하는 것이 그 출발이다. 혼돈과 갈등 속 숨은 시스템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아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이들과 협력을 통한 파일럿 프로젝트부터 시작하며 공동의 이해를 넓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내 갈등 관리와 대외 메시지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변화가 많은 혼돈의 상황에서 디테일보다는 전체를 보는 줌 아웃 전략, 시장 전략과 비시장 전략을 통합하는 시스템스 퍼블릭 어페어스를 전략적 사고의 틀로 갖추고 실행해야 한다. 혼돈이 길어질수록, 이를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 경로를 개척하는 기업이 결국 미래를 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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