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 강세면 금값은 대개 하락한다. 달러 가치 상승으로 살 수 있는 금의 양이 많아서다. 그런데 요즘 달러 강세 속에 금값이 역사적 고점을 쓰고 있다. 지난해 금값이 달러 강세 속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금값이 장기간 우상향하며 투자 매력이 상승했고 투기 수요까지 가세했다. 다음으로 중동 확전 우려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돼 안전자산을 보유하려는 심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금광 개발이 활발하지 않아 공급망 악화로 금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2025년 2월 현재 금값은 트로이온스당 2930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불안정에 금값이 1년 사이 70% 올랐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각국 중앙은행이 2026년 중반까지 월평균 38t의 금을 사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을 기점으로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세계 많은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늘렸다. 귀금속 지원 상장지수펀드(ETF)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많은 이가 금 투자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가지 특이 사항을 분석해 본다.
첫째, 중국 인민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수다. 인민은행이 지난해 4월 이후 중단한 금 매입을 6개월 만인 11월 재개했다. 보유 외환 다각화를 위해 3개월 연속 금 매입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높은 무역수지 흑자(9921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측은 이 돈으로 미국 국채 대신 금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금 매입을 늘려 위안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통화의 신뢰를 뒷받침하려 한다.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산 미 국채 가격이 하락한 데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증가했고 미·중 패권전쟁에서 미운털인 미 국채를 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미 국채 매입이 협상카드로는 가능하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중 금을 2000t 이상 가진 국가는 미국(75%) 독일(74%) 이탈리아(71%) 프랑스(72%) 러시아(32%) 중국(6%) 순이다. 괄호 안은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으로 중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그 비중이 낮다.
둘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금 차익거래 기회의 발생이다. 일각에서는 금과 은 가격이 동반 상승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관세 부과 우려 때문이라고 본다. 수입품에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면 물가 상승이 불가피해 인플레이션 헤지 차원에서 실물자산인 금 등에 수요가 몰린다. 런던은 세계 최대 금 거래 중심지다. 런던 금고에 보관된 금 물량이 1월 490만 트로이온스 감소했다. 이는 2016년 이후 최대 월간 감소폭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를 우려하던 차에 미국 금 가격이 런던 금 가격을 넘자 금 보유자들이 차익거래에 나섰다는 시각이 있다. 월가를 비롯한 미국 투자가가 금 사재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회자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뉴욕상품거래소 금고의 금이 3개월 만에 75% 증가했다. 런던거래소에 쟁여둔 금이 계속 빠져나가 부족하니 금에 헤지펀드 등의 투기세력이 붙고 있다.
셋째, 혹자는 트럼프의 또 다른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금본위제를 찬성했다. 부채 없이 미 중앙은행(Fed)의 돈을 풀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Fed는 금을 보유하지 않고 재무부에 맡기고 금 증서만 보유하고 있다. 금본위제가 붕괴하면서 킹스턴 체제에서 미 의회가 금 가격을 트로이온스당 42.22달러로 승인했다. Fed가 시세대로 금 가격을 평가한다고 해보자. 트로이온스당 2900달러대로 미 의회가 승인해준다면 금계정이 1100조원이 돼 미 재무부의 이익으로 잡힌다. 의회 동의만 얻는다면 트럼프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예산을 확보하게 된다. 금 가격 상승이 이 관점에서는 미국에 큰 이득이 된다. 금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미국의 채무를 한 방에 없앨 수도 있다. 부채 없이 금 재평가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책을 마음대로 펴면서 국가 중요 산업에 돈을 풀 수 있다는 말이 실행될지 궁금하다.
금도 은도 구리도 오르는 세상인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뭔가 한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금이 오르자 채산성이 맞아 금광 채굴이 늘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은행 외환보유액 구성을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금 보유 비중이 평균 24.6%인데 한국은행은 1.2%다. 외환보유액 성격상 금은 유동성이 낮아 매력이 떨어진다지만 너무 적은 게 아닐까. 하긴 너무 올라 매입 기회를 놓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