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가 나간 관객 많았던 '서브스턴스'…고민 끝에 베팅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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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찬란 이지혜 대표…'존 오브 인터레스트'·'악마와의 토크쇼'도 흥행

"관객이 놀랄 영화 계속 수입할 것…소지섭은 고마운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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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이지혜 찬란 대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화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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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최근 20∼30대 관객 사이에서 불고 있는 예술 영화 열풍의 중심에는 영화사 '찬란'이 있다.

지난해 수입해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관람객 20만5천여 명)와 '악마와의 토크쇼'(10만1천여 명)가 흥행한 데 이어 연말에 개봉한 '서브스턴스'는 52만명을 돌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해외 예술영화가 50만 관객을 달성한 건 '서브스턴스'가 역대 네 번째다.

이 영화는 한물간 배우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주사한 뒤 젊고 아름다운 수(마거릿 퀄리)로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수위 높은 보디 호러(신체 변형·훼손이 나오는 공포 영화) 장르로, 몸이 기괴하게 변하고 피를 폭포처럼 내뿜는 모습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칸영화제 시사회에서 보다가 포기하고 나간 관객도 많았어요. 직원한테 물었더니 자기는 끝까지 너무 잘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덧붙이는 말이 '우리 말고 다른 데서 수입해 오면 재밌게 볼 거 같다'였어요, 하하."

지난 25일 만난 이지혜 찬란 대표는 작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서브스턴스' 시사회 후 직원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과연 이 영화로 승부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 결국 베팅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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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 영화 중에 좋은 영화는 많지만, 보고서 재밌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은 드물어요. 근데 '서브스턴스'는 너무 재미가 있었어요. 거기에 완성도도 높고 의미까지 있는 영화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 찬란이 수입한 영화 중 가장 비쌌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찬란이 목표한 '서브스턴스' 최종 관객 수는 30만명가량이었다. 그러나 개봉(12월 11일)을 한 주 앞두고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지고 극장가가 얼어붙으면서 흥행에 탄력이 붙지 않았다.

그러다 개봉 초기에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덕에 한 달 만에 '역주행'에 성공했고 IPTV 서비스를 시작한 최근까지도 평일 관객 수 5천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요즘 예술 영화는 오히려 시간이 좀 흘러야 더 많은 관객이 알아봐 주는 것 같다"며 "영화가 오랫동안 상영한다는 것만으로도 검증된 작품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그렇고 '극장에서만 봐야만 하는 영화'라는 인식도 강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안방에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나 유튜브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지만, 그래서 더 극장에만 누리는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거지요. 관람 환경과 관객의 취향이 바뀌었어도 작품만 좋다면 영화라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계속 힘 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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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브스턴스' 흥행을 이끈 건 젊은 여성 관객이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으로 인해 파멸로 달려가는 엘리자베스에서 자기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글이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왔고, 각종 패러디와 밈도 꾸준히 생산됐다.

이 대표는 "'서브스턴스'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이고 과감하게 보여준 작품"이라며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했다.

'서브스턴스' 공동 제공사로 배우 소지섭의 소속사인 51k가 이름을 올려 일부 언론에선 이 작품을 '소지섭 픽(pick)' 영화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지섭은 투자만 할 뿐 영화를 직접 고르지는 않는다.

이 대표는 소지섭 주연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사에서 일하던 2008년께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이 대표와 친분이 깊었던 51k 김정희 대표는 평소 예술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소지섭과 찬란을 연결해줬고, 소지섭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기간과 직후에 시장이 특히 어려웠는데 소지섭 씨가 많은 도움을 줬다"면서 "너무나 고마운 투자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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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덕분에 찬란은 마니악한 다큐멘터리부터 영화제 수상작, 대중을 아우르는 로맨스물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수 있었다.

'테이크 쉘터'(2011), '카페 소사이어티'·'세일즈맨'(2016)·'더 스퀘어'(2017), '유전'·'지구 최후의 밤'(2018), '미드소마'(2019), '여름날 우리'·'그린 나이트'(2021) 등이 찬란의 대표작이다. 시네필(영화 팬) 사이에서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이 대표는 "영화의 재미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면서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영화에 보내는 최고의 칭찬은 '그 영화 좋은 영화야'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좋은 영화라고 해서 모두 수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떨 땐 제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모두가 그냥 마음속에 넣어두라며 말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마이너스만 안 난다면 그런 작품도 꾸준히 하고 싶어요. 항상 과감하게 선택해온 편이었으니까요. 앞으로도 관객이 놀랄 만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선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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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이지혜 대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영화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의 영화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2.28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2월28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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