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고 오르던 미국 증시가 갑작스럽게 변동성이 극에 달하는 ‘워블링 장세’(wobbling market)로 바뀌고 있다. 과거 흐름을 추적해 보면 미국 증시는 크게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을 거친 뒤 재차 뛰어오르는 급등장(skyrocketing)과 다시 한번 추락하는 폭락장(flash crash)이다.
두 흐름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가늠하려면 주가가 흔들리는 원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주요 기업의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조정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계속 제기돼 왔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비롯해 어떤 평가 잣대를 적용해도 미국 증시는 거품이 낀 것으로 나온다.
트럼프노믹스도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불과 40여 일 만에 관세에 초점을 맞춘 행정명령이 70건 이상 발동됐다. 포고령, 메모랜덤까지 포함하면 행정조치가 100건에 이른다. 국제법에 의존하지 않고 ‘광인과 홍수 전략’으로 쏟아내는 관세 정책은 주식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롱테일 리스크다.
통화정책도 그렇다. 작년 9월 뒤늦게 추진한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부작용으로 인플레이션 재발 조짐이 뚜렷하다. 1980년대 초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가 우려될 정도다. 이달 미국 중앙은행(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피벗을 지속할 것인지, 속도를 늦출지 아니면 종료할지를 놓고 논쟁이 심하다. 어느 시각이 부상하느냐에 따라 주가는 출렁일 수밖에 없다.
펀더멘털 요인도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작년 말까지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 미국 경제가 물가 하락 속에 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웃도는 골디락스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되기 시작한 경제지표를 보면 경기 둔화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발표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직전 분기 3.1%에 크게 못 미치는 2.3%로 나와 올해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곧이어 나온 지난 1월 소매판매가 작년 12월 0.7%에서 -0.9%로 급락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에 재진입했다. 2월 들어서는 소비심리지수가 민주당 지지층에서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인 31대로 내려앉은 가운데 1년 후 기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4.3%로 치솟았다.
최근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에선 재정정책에서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트럼프 풋’이 임박했다는 기대와 통화정책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파월 콜’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올 수 있다. 두 정책의 충돌은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주도주도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미국 증시를 이끌어온 M7(미국 7대 기술주)은 작년 말을 정점으로 15% 넘게 급락했다. 이달 들어서는 ‘미국 증시를 떠나 시진핑 중국 주석이 아낌없이 지원하는 중국 기술주인 ‘레드 테크 M7’이나 ‘테리픽 10’으로 바꿔 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부상하고 있다.
올해 3월은 향후 증시 흐름을 결정할 굵직굵직한 일정이 많이 예정돼 있다. 4일부터 시작하는 중국 양회는 미국 증시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부동산 대신 증시에 초점을 맞춘 부양책이 확정되고 기업 정책이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은 우대하고 민간기업은 억제)에서 ‘국진민진’(國進民進·국유기업과 민간기업 동시 우대)으로 바뀌면 중국 증시가 부상할 수 있다.
2022년 10월 공산당대회 이후 외국인 자금 유입을 억제하고 중국 대탈출(GCE·Great China Exodus)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반(反)간첩죄가 철회되면 미국 증시에서 중국 증시로 투자 자금이 대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증시는 한국 증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과 환율 정책의 윤곽이 잡힌다면 변동성이 심한 미국 주가의 향방도 자리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는 투자에도 ‘균형의 미학’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