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딥시크 시대에 고색창연한 ‘계몽’이 화두로 떴다. 탄핵 찬반과 무관하게 ‘계엄 덕분에 계몽됐다’는 고백이 잇따른다. 국가 시스템을 헝클어놓은 입법부 폭주와 사법부 편향의 실태를 이제야 알게 됐다는 우파 광장의 목소리도 오버랩된다. 보수 결집이라는 선명한 현상이 있긴 하지만, 중도층의 각성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좌파 진영은 ‘국민이 무지몽매하다는 말이냐’며 짐짓 무시하지만 실체는 분명하다. 중도 좌파 성향 ‘일타강사’는 연봉 60억원을 포기하고 ‘계몽령’ 전도사로 나섰다. 그의 유튜브 영상(3개)은 단숨에 1000만 뷰를 찍었다. 역사관·세계관이 나태하고 타성적이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는 청년의 사연도 적잖다.
계몽(enlightenment)은 ‘어두운 것을 밝힌다’는 뜻이다. 전근대적 냄새를 풍기지만 예나 지금이나 계몽은 문명 진화의 동력이자 작동 원리다. 칸트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 대로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인류는 인간 이성·과학에 기반한 지식 네트워크 구축에 성공했다. 유럽이 동아시아·이슬람 문명을 추월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의 유럽 황금기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역시 계몽 축적의 결과다.
한국이 보잘것없던 식민지국에서 최단 기간 선진 대열에 합류한 비결도 마찬가지다. 독립협회가 최초의 ‘민중 계몽단체’로 출범한 때가 대한제국이 선포(1897년)되기도 전인 1896년이다. 당시 계몽된 민중은 황제권에 맞서 근대적 의회 설립에 나서는 등 구한말 정치·사회 질서를 업그레이드했다. 불과 두어 세대 만에 폐허에서 ‘주요 10개국(G10)’으로 압축 성장한 것도 안팎의 정세와 나라의 앞날을 살핀 지도자들의 각성 및 계몽 덕이었다.
한국은 다시 계몽발 압축적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가장 희한하고도 극적인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계몽 논란을 불편해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목격된다. ‘세계관이 180도 바뀌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이재명 대표가 이념에서 실용으로 급선회했다. ‘자위대 군화발’ 운운하더니 ‘일본의 국방력 강화를 지지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달라진 공기를 직감하고 간판 정책인 기본소득 폐기까지 시사했다. 이쯤 되면 압축적 계몽 바람의 선두주자라고 부를 만하다.
계몽을 가장 심도 있게 파고든 20세기 연구자는 독일 철학·사회학자 하버마스다. 그는 진정한 민주사회는 계몽으로만 달성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계몽이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고 우려했다. 인간 이성 이면의 폭력성이 발현되면 계몽이 외려 억압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 역사 속 계몽은 전체주의 도구로 빈번하게 악용됐다. 히틀러 심복 괴벨스의 직책이 다름 아닌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이었다. 차베스도 멘토였던 시몬 로드리게스의 계몽 사상에 심취해 엉뚱한 볼리바리안 혁명을 감행했다. 작가 유시민이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추어올린 것도 이런 심성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계몽의 타락에 대응한 하버마스의 해법은 ‘이성적 대화’다. 수평 관계에서의 합리적 소통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불통 한국’은 걱정스럽다. 한쪽에선 내란 동조니 극우니 맹목적 비난을 쏟아내고 다른쪽에선 물리력으로 법원을 공격한다. 카톡 검열, 여론조사기관 규제 논란에서 보듯 ‘입틀막’ 분위기도 뚜렷하다. 대담 프로그램 도중 원론적 차원에서 ‘부정선거 이슈’를 언급한 공영방송 진행자에게 자리 박탈 위협이 가해질 정도다. 권력이 폭력을 행사하고 강제수용소를 운영해야 전체주의인 것은 아니다. 사상·표현의 자유가 통제되고 이성적 논쟁이 봉쇄되는 곳이면 낮은 단계의 전체주의라 할 것이다.
계몽 시대에는 합리적 이성이 살아남고 독선적 반이성은 도태된다. 사생결단 탄핵 전쟁의 최후 승자도 누가 계몽된 시민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대안을 제시하는지로 갈릴 것이다.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관의 지배’로 치닫는다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면 헌재 결정은 끝이 아니라 더 큰 논란의 시작이 될 공산이 크다. 해묵은 이념과 진영 논리에 찌든 낡은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대정신 출현은 또 멀어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