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이 나눗셈의 본질 아니다”… ‘삶의 셈법’ 이해하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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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셈법을 배웁니다.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이 기본입니다. 이때 배운 셈법은 숫자놀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다루는 ‘마음가짐 셈법’으로 이어지고 활용됩니다.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은 덧셈의 대상입니다. 멀리하고 싶은 사람은 뺄셈, 갈라서 분류하고 정리하고 싶을 때는 나눗셈을 씁니다. 자기편과 상대편을 구분하면 나눗셈입니다. 관계의 본질을 과장하면서 누구를 대한다면 곱셈을 한 것입니다.

분석에서도 기본 셈법은 예외 없이 작용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관점을 고집하면서 다른 관점을 회피하는 성향을 분석 과정에서 보인다면 뺄셈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삶에 관해 긍정적인 것은 덮고 부정적 측면만 이야기한다면 뺄셈입니다. 반면에 삶을 두루뭉술하게 바라보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면 덧셈에 치중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전체로 파악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으로 가른다면 나눗셈입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과장해서 믿어버린다면 곱셈입니다. 이미 가진 것을 돌보지 않고 못 가진 것을 늘 아쉬워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사람에서는 뺄셈 성향을 덧셈으로 바꿔야 분석이 성공합니다. 장점은 곱셈으로 키우고 단점은 나눗셈으로 덮어야 삶이 덜 고단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방식들도 비슷합니다. 자기편과 상대편을 나누어서 ‘갈라치기’하는 것은 나눗셈입니다. 자기편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이익공동체 회원권’을 제공하고, 상대편에게는 분명히 드러내 보이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불이익을 당하게 한다면 뺄셈입니다. 상대를 매도하는 데는 곱셈이 아주 효과적입니다.

나누고 빼서 자기편의 숫자를 늘리고 상대편은 따돌려서 밀어 내치면 성공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나눔질의 본질은 가르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나누고 비교해서 장점과 강점을 서로 배우며 함께하기 위함입니다. 나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반드시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반드시 틀릴 일도, 사라질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세대 간 갈등에서도 그러합니다. 부자와 빈자의 구분에서도, 가치관이나 이념의 영역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에서도,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의 비교에서도 그러합니다. 잘못된 믿음에 빠져 가르기만 하면서 같이 해야 할 일을 찢고 싸우면 필연적으로 파국을 향해 함께 치닫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익숙한 방식에서 낯선 방식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방식은 헛된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일단 나누면 검은 것과 흰 것처럼 뚜렷하게 구분이 되니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검은 것이 옳으면 흰 것은 틀려야만 합니다. 흑백논리에 빠져 조화로움을 놓칩니다. 검어서 더 희고, 희어서 더 검습니다. 나누기는 한쪽만을 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른 쪽을 없애기 위함도 아닙니다. 사랑과 미움은 사랑이 깊을수록 함께합니다.

자신이 알고 이해하는 일을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조화로운 통합을 방해합니다. 사람마다 지닌 고유함은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조화로움은 나와 남이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배척하게 됩니다. 이러한 우려, ‘지식의 저주’는 전문가가 전혀 아닌 사람, 전문가는 아니나 스스로 전문가라고 착각하고 믿는 사람, 실제 전문가인 사람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지식은 소통, 이해, 공유의 대상이지 일방적 전달의 대상이 아닙니다. 분석이든 현실 세계든 세월을 거쳐 생겨나고 굳어지고 반복되는 관점은 바뀌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알고 싶지 않은 것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립니다. 본능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줄이고 합리성으로 대치하려면 정말 애를 써야 합니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불안, ‘이름 없는 두려움’이 길을 막고 방해합니다. 파국이든 화합이든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물음표를 붙이지 않은 믿음과 신념은 분노나 적개심, 증오와 같은 파괴적인 본질을 품고 있어서 어디로 튈지 예측과 대비가 불가능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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