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한 ‘골리앗’ 나이키에 발 편한 러닝화로 승부수 던졌다[최중혁의 월가를 흔드는 기업들]

1 week ago 1

스위스 액티브웨어 ‘온(On) 홀딩’

《“하루 만에 나이키 주가가 20% 하락한 것은 상장 이후 44년 만에 처음입니다.”

미국 월가는 2024년 6월 나이키의 부진한 실적 발표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날 나이키 주가는 창사 이래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나이키는 2024 회계연도(2023년 6월∼2024년 5월)에 514억 달러(약 75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2억 달러가 늘었을 뿐이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털 대표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털 대표
이는 팬데믹 때인 2020년을 제외하면 14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었다.

월가를 뒤흔든 ‘나이키 쇼크’는 단기 실적 부진 때문은 아니다. 월가는 나이키의 2025 회계연도 매출이 전년 대비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골리앗’의 위기는 신흥 도전자에겐 절호의 기회다. 4년 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스위스 액티브웨어 브랜드 ‘온(On)’의 지주사인 ‘온 홀딩’은 ‘거함’ 나이키의 공백을 파고들어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함’ 나이키의 백스텝2020년 나이키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존 도나호는 전자상거래 회사 이베이 출신이었다. 그는 팬데믹 기간 온라인과 직매장을 중심으로 소비자 직접 판매(D2C)를 강화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과거의 주요한 유통 채널인 백화점, 스포츠 편집숍 등 도소매상과의 거래는 대폭 줄였다.

도나호의 승부수는 처음에는 성공하는 듯 보였다. 디지털 매출 비중이 30%로 상승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온라인 매출이 급감하자 문제가 불거졌다. D2C 모델은 회사가 재고와 배송 부담을 직접 떠안는 구조였다. 비용 부담이 커지자, 결국 회사는 대량의 재고를 저가로 시장에 풀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이키에 등을 돌린 도소매상들은 매대에 경쟁 브랜드 제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하나둘 떠나고 매출 부진이 이어졌다.

인기 제품의 희소성이 사라진 것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다급해진 나이키는 인기 한정판 제품인 ‘에어 조던 1’, ‘에어 포스 1’, ‘덩크’ 등을 대량으로 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22년 나이키는 역사상 가장 많은 950개의 조던 시리즈 한정판 신발을 선보였다. 소비자들은 흔해진 상품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BMO캐피털에 따르면 2023년 출시된 조던 한정판 신발 중 20%만이 매진됐다. 내놓기만 하면 무섭게 팔리던 제품들이었다.

나이키가 핵심 제품인 러닝화 개발에 소홀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팬데믹 이후 늘어난 러닝 붐을 타지 못했다.

액티브웨어 시장 뒤흔드는 온

나이키가 뒷걸음질을 친 시장을 파고든 브랜드가 바로 2010년 등장한 온이다. 트라이애슬론 세계 챔피언 올리버 버나드는 선수로 활동할 때 만성적인 아킬레스건 염증에 시달렸다. 그는 발이 편한 러닝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2010년 신발 전문가 등 2명과 함께 스위스에서 온 홀딩을 세웠다. 씨티그룹은 “나이키가 전통적인 유통 채널에서 철수하면서 온 홀딩과 같은 신생 브랜드들이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온 홀딩은 미국 러닝화 브랜드 ‘호카(Hoka)’와 함께 월가에서 ‘시장을 뒤흔드는 스포츠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뉴욕증시 상장 이후 2023년까지 매출이 연평균 57% 성장했다. 2024년 예상 매출은 전년 대비 29% 증가한 26억 달러다. 월가는 온 홀딩 매출이 2027년까지 연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이키가 2024 회계연도 매출 수준으로 복귀하려면 약 4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액티브웨어 시장의 규모는 약 5174억 달러이며 2034년까지 매년 5.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 홀딩은 경쟁업체들의 역사적 성장 속도와 비교해도 무척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온 홀딩 매출이 2024년 26억 달러에서 14년 뒤인 2038년 19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이키는 매출이 22억 달러에서 190억 달러로 늘어나는 데 19년이 걸렸다. 아디다스는 24억 달러에서 190억 달러로 늘어나는 데 약 17년이 걸렸다.

온 홀딩은 매출뿐 아니라 이익률도 돋보인다. 매출에서 원가를 뺀 마진율을 뜻하는 매출총이익률은 2023년 기준 60% 수준으로 경쟁사인 데커스 아웃도어, 아디다스 등을 압도한다. 이보다는 세계 최대 명품업체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에 가깝다. 설립된 지 고작 15년밖에 안 된 회사가 어떻게 이러한 성과를 달성했을까?

혁신과 마케팅, ‘러닝화의 LVMH’

온 홀딩의 성공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혁신적인 러닝화 개발이다. 액티브웨어 소비자들은 늘 새로운 브랜드와 혁신적인 제품을 찾는다. 온 홀딩은 본업에 충실했다. 기존 신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순하면서도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트라이애슬론 금메달리스트, 마라톤 챔피언 등 전문선수들이 디자인과 제작에 직접 참여해 신발의 기능성을 높였다.

특히 발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의 하중을 고르게 받쳐 주는 ‘클라우드테크(CloudTec)’ 기술은 전문 러너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로봇 제작을 통해 탄소 배출을 75% 줄이는 ‘라이트스프레이(LightSpray)’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혁신들 덕분에 온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둘째, 효과적 마케팅 전략이다. 온 홀딩은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팀스포츠보다 트라이애슬론, 마라톤, 테니스 같은 개인 스포츠에 집중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특히 유명 테니스 선수 페더러가 주주이자 모델로 참여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2023년 뉴욕 마라톤과 보스턴 마라톤에서 케냐의 헬렌 오비리가 온슈즈를 신고 연이어 우승하며 기술력과 제품 신뢰도를 입증했다.

의료인을 통한 할인 마케팅도 한몫했다. 미국 병원에 가면 의사나 간호사들이 온 신발을 신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온 홀딩은 구글 검색어 인기도를 분석하는 구글 트렌드에서 2025년 2월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신발과 미주 의존-유사 패턴은 한계

온 홀딩 매출의 95%가 신발에서 나온다. UBS에 따르면 전체 액티브웨어 시장에서 온 홀딩의 주요 시장인 애슬레틱 풋웨어의 매출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2028년까지 애슬레틱 풋웨어는 연평균 7% 성장하지만 일반 신발은 3.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미국에서 온의 브랜드 인지도는 전년의 두 배 수준인 20%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나이키(95%)와 아디다스(95%)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온 홀딩 전체 매출의 4%에 불과한 의류도 신발에서 쌓은 브랜드 가치를 발판으로 확장해야 할 시장이다. 온 홀딩 매출의 65%는 미주에서 발생한다. 아시아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앞으로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하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전열을 재정비하고 나면 강력한 반격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온 슈즈의 디자인이 유사한 패턴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유행이 끝나면 수요가 급감할 가능성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온이 축구, 야구 등 인기 팀스포츠에 노출되지 않아 브랜드의 확장과 매출의 장기적인 증가세 유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온 홀딩은 나이키의 공백을 혁신적 제품과 효과적 마케팅으로 파고들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지속적인 혁신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온 홀딩이 시장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확대할지, 그리고 나이키가 반격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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