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바로잡아야 할 때 ‘쇼’ 벌이면 부적절
‘커피 산책’도, 金여사 띄우기도 결국 뭇매
8·15에 ‘국민 임명식’ 과연 필요한 쇼인가
정치에선 실질 성과 있다면 쇼 없이도 박수
기무라의 ‘쇼’에 관한 뉴스를 들었을 때 김원준의 노래 ‘쇼’가 떠올랐다. 둘 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고 외치는데, 김원준의 ‘쇼’와 달리 기무라의 ‘쇼’는 기분을 망칠 뿐이었다. 왜 그럴까? 쇼를 멈추고 현실을 바로잡아야 할 때 쇼를 계속하자고 외쳤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자주 쇼를 본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대통령과 비서진의 사진이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권위주의 시대, 소통 부재의 시대가 끝나고 유쾌한 소통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던 시절이라 관련 댓글도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진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시 청와대에는 천재적인 공연기획자가 있었고, 많은 사진과 영상이 실제로는 기획된 것이었다는 게 알려졌다. 공도 있고 과도 있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끝난 정권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 기획된 쇼가 있었다는 게, 점수를 깎아먹는 요인이 됐다. 5월의 신록이 찬란한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그 멋진 사진이 지금은 오히려 서글퍼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 시대의 사진은 더 서글프다. 왜 그렇게 대통령 부인을 띄우는 쇼를 했을까. 더욱 민망한 것은 그 쇼의 기획자에게는 재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능력에 넘치는 쇼를 벌이기보다 후보 시절 약속했던 대로 영부인으로서 조용히 내조에 전념했다면 훨씬 더 나았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인인 김혜경 여사의 조용한 처신이 현명해 보인다.그렇다고 지금 정권이 어설픈 쇼를 포기한 건 아니다. 7월 이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는 일반에 공개된 소셜미디어를 통해 업무를 협의했다. 국민이 긴급히 알아야 하는 업무도 아니었기에 뜬금없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는데, 기획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게 과연 필요한가 싶은 쇼도 있다. 이달 15일 광복절 저녁에 열리는 ‘국민 임명식’이 그렇다. 당일 오전 진행되는 경축식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자리다. 그런데 같은 날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축제를 연다는데, 그 축제의 중심이 ‘국민 임명식’이란 이름의 대통령 취임식이다. 행사 전이라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광복절의 주인공으로 대통령을 내세우는 행사라면 기분 좋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김원준의 ‘쇼’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의 하루는 당신이 주인공인 쇼”라고 외치기 때문에 우리를 설레게 했다.
정말 하지 않았으면 싶은 쇼도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연 공모전’이다. 1970년대도 아니고 2025년에 정부 주최의 사연 공모전이라니. 지지자들로부터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찬사를 얻는 것 외에 이 공모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너무 촌스러워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획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소비쿠폰의 긍정적 효과가 쿠폰에 든 비용보다 크다면, 그 때 가서 이 사업의 성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해도 된다. 박수를 미리 쳤는데 현실이 초라하면 이 쇼는 참가자들에게 또 얼마나 서글픈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최근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방지를 위해 많이 애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임기 동안 산업재해율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특별히 쇼를 기획하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하나씩 해결해야 할 난제가 첩첩이다. BTS와 블랙핑크를 가진 나라에서 정치가는 멋진 쇼로 국민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김원준이 노래하는 쇼, 끝이 없는 유쾌한 쇼는 그들에게 맡기고, 정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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