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우는 줄” 영국도 웃게 만든 레이건의 발칙한 여왕 유머[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1 month ago 6

1982년 영국 방문 때 윈저궁에서 함께 말을 타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여왕이 탄 말이 말썽을 부리자 레이건 대통령이 유머 실력을 발휘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1982년 영국 방문 때 윈저궁에서 함께 말을 타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왼쪽)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여왕이 탄 말이 말썽을 부리자 레이건 대통령이 유머 실력을 발휘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The Captain von Trapp in the White House.”(백악관의 폰트랩 대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되자 미국인들이 걱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머 능력 제로의 대통령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머를 중요한 삶의 요소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에게는 스트레스 받는 일입니다. 언제나 화난 표정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뉴욕타임스가 붙인 별명입니다. 폰트랩 대령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딱딱한 표정의 남자 주인공입니다.

미국 대통령과 회담할 때 상대국 정상들은 유머 공부를 철저히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던지는 농담에 웃는 타이밍을 못 맞추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습니다. 필살기 농담을 준비해가는 정상도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신 독설과 조롱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문에 유머 한 구절을 넣기 위해 할리우드 작가들을 동원해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유머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Humor is a tool for building bridges with people.”(유머는 국민과 이어주는 다리를 놓기 위한 도구다.) 근엄이 중요한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유머가 별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미국에서는 ‘웃긴 대통령’이 환영받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유머 실력을 알아봤습니다.

△“The only piece of advice I would have for her in the event that she wins is not to let her husband Doug anywhere near the nannies.”(그녀가 승리할 경우 내가 해줄 유일한 충고는 남편을 보모 옆에 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머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처참하게 실패할 뿐입니다.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행사장을 싸늘하게 만든 유머입니다. 더그는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남편 더그 엠호프를 말합니다. 그가 첫 번째 결혼 생활 때 딸이 다니던 학교 교사와 부적절한 관계였던 것을 비꼰 유머입니다.

‘below-the-belt joke.’(벨트 아래 조크.) 이런 농담을 부르는 말입니다. 벨트 아래를 때리면 반칙입니다. 페어플레이가 강조되는 대선 직전에 선거 유세도 아닌 자선 행사에서 상대 후보 배우자의 과거 사생활을 들춰내는 것은 비겁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한 트럼프 후보는 스피치라이터를 탓했습니다. “These idiots gave me this stuff.”(이 바보들이 나에게 이런 농담을 줬네.)

△“Quite all right, Your Majesty. I thought it was the horse.”(괜찮습니다, 여왕 폐하. 말이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유머의 고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만났을 때입니다. 둘은 말을 탔습니다. 여왕이 탄 말이 자꾸 히힝거리며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습니다. 무안한 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Oh dear, Mr. President, I’m so sorry!”(미스터 프레지던트, 미안하네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답입니다.

미주알고주알 자주 불만을 표하는 여왕의 습관을 말 울음에 비유한 것입니다. 상대를 조롱하지만, 악의 없고 재치 있기 때문에 모두 웃을 수 있는 농담입니다. 유머의 목적은 재미(entertain)이지 모욕(insult)이 아니라는 것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론입니다. 여왕을 비판하면 발끈하는 영국인들도 이 농담만큼은 웃어넘겼다는 후문입니다.

△“If I were two faced, would I be wearing this one?”(내가 두 얼굴이면 이 얼굴을 달고 있겠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심각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장난기 넘치는 유머 실력을 갖췄습니다. 대선 토론 때 상대 후보가 “당신은 두 얼굴이다”라고 공격하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위선적이라는 의미의 “two faced”(두 얼굴) 공격을 외모적 의미의 얼굴로 바꿔 비껴간 것입니다. 못생긴 얼굴을 인정한 링컨 후보의 자폭 개그에 웃음이 터지고 상대 후보는 공격 모멘텀을 잃었습니다.

“The president is mostly the president, and an occasional comedian.”(대통령은 대부분은 대통령이지만 때때로 코미디언이 돼야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고마워요, 오바마’의 저자 데이비드 리트가 한 말입니다. 국민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기 위해 망가질 위험을 감수하는 대통령을 국민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혼란의 시대에는 비판이 난무합니다. ‘나는 잘났고 상대는 못났다’ 식의 일방적인 비판은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반발심만 키웁니다.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자신부터 낮춰야 한다는 것을 링컨의 유머가 보여줍니다.

※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발송되는 뉴스레터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에서 더욱 풍부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