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공간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윤동주의 삶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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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공간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윤동주의 삶과 행적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광야에 서면 들려올 듯한 목소리를 시로 써 내려간 시인 윤동주, 오는 19일은 그가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의문을 품고 급작스럽게 사망한 지 80주기가 되는 날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해방 후 애국청년으로, 순수한 영혼으로, 서정적인 시인으로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 저수탱크를 문학관으로 리모델링

그의 생애와 문학을 기념하는 건축물로 만들어진 윤동주문학관은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 청운동 인근에서 하숙하고 인왕산을 산책했다는 관련성을 근거로 서울 종로구에 들어섰다. 청운동 고압저수탱크로 쓰인 폐건물을 2012년 리모델링했다. 그가 우물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며 쓴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물처럼 물을 담던 저수탱크를 윤동주문학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윤동주문학관 전경  김재경 사진작가 제공

윤동주문학관 전경 김재경 사진작가 제공

설계를 맡은 이소진 건축사사무소 리옹 대표는 고압저수탱크를 윤동주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그는 시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용기를 주는 힘을 품고 있듯, 소박하지만 강인한 내면을 느낄 수 있는 윤동주를 물탱크라는 거대한 공간에 숨겨진 힘으로 은유해냈다.

두 개의 큰 물탱크 중 하나는 자화상을 모티브로 해 천장을 뚫어 하늘이 보이는 열린 우물로, 다른 하나는 꽉 막힌 저수조를 그대로 남겨 마치 그가 겪은 컴컴한 감옥에 들어온 듯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아쉬움을 남긴 그의 삶의 행적이 텅 빈 상태의 물탱크 공간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윤동주문학관은 2014년 서울시건축상 대상 등 여러 건축상을 수상했고, 2017년 UIA 서울 세계건축대회에서 발표돼 이소진 건축사의 섬세한 디자인이 호평을 받았다.

◇ 생애와 문학적 자취 강조한 기념관

윤동주기념관 전경  김용관 사진작가 제공

윤동주기념관 전경 김용관 사진작가 제공

2020년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새롭게 문을 연 윤동주기념관은 문학관과 달리 윤동주와의 관련성이 크다. 윤동주가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학생시절 생활한 기숙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어서다. 연세대 성주은 교수(한국건축설계학회장)와 염상훈 교수가 디자인한 이 건물은 202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이 건물은 “윤동주 개인을 기념하기보다 그의 문학활동을 위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윤동주 시인 유족 뜻에 따라 기념관 입구에 그의 동상이나 초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문학적 활동을 암시하는 서적들의 사진이 방문객을 반긴다.

기숙사 건물이기에 작은 방들로 이어졌는데 기념관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기존 건물의 외관과 골격은 그대로 남기고 조명과 내부 인테리어를 통해 그의 생애와 활동을 표현하고 있다. 복도의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문과 같이 벽과 오프닝이 리듬을 이루며 빛과 어둠이 교차되면 윤동주 시인의 굴곡진 삶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다.

윤동주가 창문을 통해 시상을 떠올렸다는 점에서 창문 위치와 크기는 그대로 뒀다. 외벽과 지붕도 남겨둬 기숙사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다. 다락방의 목재틀 천장이 건물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건물의 오래된 시간을 연상시키기 좋아 그대로 노출돼 있다. 윤동주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느껴지는 공간이 그대로 남겨진 것이다.

문학관과 기념관 두 건물 모두 기존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관람자의 섬세한 감성을 잘 이끌어냈다. 윤동주 시인이 원래 조선의 모습, 조선인이 겪는 아픔을 독립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상징화하며 시로 승화시킨 것과 같이, 두 건축가는 원래 건물의 모습과 거칠지만 순수해 보이는 남은 구조체를 빛과 열린 벽, 열린 지붕을 통해 시를 쓰듯이 공간을 디자인했다.

원형을 잘 살린 두 건물은 3차원의 실제 공간에서 그를 조우하게 했다. 교과서, 인터넷과 같은 가상 공간에서는 전달될 수 없는 생생한 느낌 즉 광야에 서면 들려올 듯한 목소리처럼, 그 건물들에 서면 그의 영혼과 교류하도록 이끄는 신비스러움이 있다. 이 두 건물은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물 공간에서의 경험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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