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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수업 중에 복도를 오토바이가 달리던 일본 교토 최고의 문제아 학교. 체육 교사로 부임한 뒤 문제 학생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이 학교 럭비부를 일본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야마구치 요시하루(山口良治) 전 후시미공고(현 교토공학원고) 럭비부 감독이 29일 오전 8시 13분께 교토 시내 한 병원에서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일본 매체가 30일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3세.
1943년 2월 15일 후쿠이현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 때 "선생님의 여러 보살핌을 받은" 경험에서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고교 시절 럭비를 시작했다. 체육대학 졸업 후 고교 교사로 일하는 한편, 1966년 일본 럭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포지션은 플랭커(축구 '포워드'와 비슷)였다.
1974년 체육 교사로 부임한 후시미공고는 황폐한 상태였다. 수업 중에 복도를 오토바이가 달리고, 교토에서 가장 난폭한 고등학교로 불렸다. 고인은 이런 학생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교사들을 향해 "자기 형제나 자녀라도 무시하겠느냐"며 분노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에게 '울보 선생님'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1975년 럭비부 감독에 취임했다. 부원들은 럭비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말썽꾸러기들뿐. 감독 취임 초기 자기들끼리 모의해 연습 경기 출전을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해 5월17일 하나조노고교와의 첫 공식전에선 0-112라는 대패를 당했다. "너희들, 분하지 않느냐"며 학생들을 격려하며 열혈 지도로 단련시킨 끝에 1981년 1월 전국 고교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4차례 전국 제패와 2회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기든 지든 크게 우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애제자 중 한명인 야마모토 신고씨는 중학생 때부터 유명한 문제아였다. 고인은 "럭비는 규칙이 있는 싸움"이라는 말로 그에게 럭비를 권했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야마모토가 항상 배고파한다는 걸 눈치채고 시합 전 큰 주먹밥 2개를 챙겨주곤 했다. 나중에는 "문제가 있는 학생의 마음을 네가 가장 잘 안다.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고 격려해 나라현의 고교 교사로 키워냈다. 야마모토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습니다"라며 "저는 주먹밥 하나 덕분에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어요. 야마구치 선생님이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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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열정적인 지도와 학생들의 성장기는 1984∼1985년 TBS 계열 방송국이 방영한 학원 드라마 '스쿨☆워즈 ~울보 선생님의 7년 전쟁∼'의 모델이 됐다. '교내 폭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시절, 불량 청소년들이 럭비를 계기로 변해간다는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켜 시청률 20%를 넘긴 히트작이 됐다. 드라마 방영 후인 1985년 일본 전역의 고교에서 럭비부 입부 희망자가 급증할 정도였다.
닛칸스포츠의 고교 럭비 담당 기자였던 기무라 유조(木村有三)씨는 고인이 25년 전 취재에 응하며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나설 수 없는 선수의 아쉬움을 생각하고, 함께 힘써온 동료들을 믿으며, 그리고 여기까지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싸워주길 바랍니다. 믿음은 힘이 되거든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회상한 뒤 "다정하게, 뜨겁게, 전력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썼다.
chungwo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5월30일 18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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