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 지연-소득 감소로 韓 경제에 그림자
‘구조 문제’라기엔 엄중하고 낡은 제도 탓도 커
청년고용에 재정 쓰고 교육-노동개혁 서둘러야
이런 오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의 청년들이 부모보다 가난해지는 첫 세대가 되리라는 경고음이 크게 들려온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20대 총취업자 수는 감소했지만 비정규직 취업자는 늘면서 이 연령층 비정규직 비율이 43%로 높아졌다.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15∼29세 청년은 작년 말 기준 약 41만 명으로, 한 해 동안 12% 넘게 늘었다. 13일자 동아일보 보도는 작년 20대 취업자 임금 상승률이 전체 연령층 가운데 가장 낮은 1.6%에 그쳤음을 알려준다. 청년의 늦은 취업과 일자리 질 악화는 이들의 생애 총소득을 감소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은 다양한 경로로 한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첫째,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 얼어붙은 고용시장과 마주하게 된 청년들은 생애에 걸쳐 고용과 소득의 감소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외환위기의 충격을 분석한 최자원 황지수 손혜림 교수의 연구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고 경험을 통해 역량을 쌓을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청년이 늘어나면 우리 인적자원의 질이 낮아지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둘째, 청년들의 노동시장 여건 악화는 결혼과 출산이 어려운 현 상황을 고착시킬 것이다. 낮은 소득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먼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젊은이가 결혼과 같은 장기적인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필자의 연구는 청년 고용률 하락과 일자리 질 악화가 결혼을 감소시킴으로써 출산율을 낮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구위기 악화 문제를 떠나서, 연애도 결혼도 어려운 사회는 그 자체로 불행하다.셋째, 청년세대의 힘겨운 현재와 불안한 미래는 부모 세대의 노후를 압박할 것이다. 고도 성장기에 익숙한 과거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줄고 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는 늘어나는 자녀 교육비 부담에 노후 준비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자녀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는 편히 은퇴할 수 있는 자유도 잃고 있다. 이에스더 박사의 연구는 지난 20년간 장년 여성 취업률이 빠르게 증가한 현상의 이면에 성인 자녀를 계속 뒷바라지해야 하는 어머니들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금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상당 부분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추락과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내외 경제 상황은 고용 창출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이동성이 높아진 노동시장 여건에서 기업은 교육·훈련 비용이 소요되는 신입직원 공채보다 즉시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원 채용을 선호한다. 빠른 산업구조의 변화와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 도입 확대는 양질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어느 하나 쉽게 바꾸기 어려운 요인들이다. 그러나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가 엄중하거니와 청년에게 전가되는 고통이 유독 심한 데는 낡은 제도와 미진한 정책의 탓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정부의 재정 운용에서 청년의 고용 기회와 관련된 사업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비교적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공공 부문에서의 청년 신규 채용 확대 계획을 차질 없게 추진하는 일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사회 초년생을 채용해 인재로 키워내는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청년에게 자기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내고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학술,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제도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청년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의 시작점에는 경직적이고 비효율적인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자리한다. 특히 고등교육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숙련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더 유연해져야 하고, 적성과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거듭해서 줄 수 있도록 더 너그러워져야 한다. 청년들이 충분한 기회를 얻고 공정하게 보상받는 노동시장으로의 전환도 요구된다. 업종과 직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급과 연공에 따른 불합리한 격차를 줄여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고 청년들의 취업 여건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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