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트럼프 50일, 국제질서 미래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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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안보동맹 무력화… 혼란의 50일
국제질서 퇴보할까 vs 새 질서 짤 계기 될까
韓, 바뀌는 질서 파악하며 외교전략 세워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간의 급격한 개혁을 약속한 가운데, 절반인 50일이 지났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복합적이다. 국내 정치, 대외 경제, 안보정책에서 급속하고 과격한 변화가 이뤄지면서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효율적인 정부를 구축한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보이나 공무원의 대량해고, 입법부가 설립한 국제개발처(USAID)와 같은 국가기관의 자의적 폐지, 법적 근거가 없는 정부효율부(DOGE)의 개입적 활동 등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향후 다수의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정책 역시 국제무역의 공정성과 상호주의 원칙을 재정립하고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목표를 내세웠으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다. 최근 캐나다에 대한 자동차 관세만 보더라도 정책 시행과 유예를 번복하며 관세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보이고 생활물가는 상승하는 추세다. 이러한 관세정책이 과연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정전 협상은 75년간 미국이 공들여온 대서양 동맹, 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불과 50여 일 만에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 더 나아가 유럽 전체에 대한 방위 공약을 확보할 수 없게 된 유럽 국가들은 독자적인 방위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핵 확장 억제 제공을 제안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대서양 동맹의 미래는 불확실해지고 있으며,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강대국 간 세력권 정치가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프랑스 상원의원 클로드 말뤼레는 연설에서 “미국은 그린란드·파나마·캐나다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발트 3국·동유럽을, 중국은 대만·남중국해를 차지하는 식의 강대국 타협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제질서의 미래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째, 트럼프주의 외교가 미국 외교정책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약화되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외교정책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강화되고는 있으나, 포퓰리즘에 기반한 트럼프주의가 미국 국내 정치를 장악하게 된다면 전통적인 외교정책의 합리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둘째, 트럼프주의를 역사의 불가피한 국면으로 활용해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경우다. 탈냉전기에 실험된 미국 주도의 단극적 패권 체제는 유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미국이 단독으로 글로벌 테러와 핵 확산을 막고, 중국 러시아 등 수정주의 국가들의 현상 변경 시도를 차단하며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민의 세금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직장을 잃고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은 탈냉전기 동안 줄곧 유럽의 방위비 추가 지출을 요구해왔다. 유럽 국가들의 미온적인 반응이 변화된 것은 트럼프 1기의 강압적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세계질서가 강제력 중심의 구조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는 협의와 조정을 기반으로 한 국제 리더십이 필요하다. 주요국들이 국제 공공재 생산에 헌신하고, 다자주의와 국제기구를 더욱 강화하며, 포용과 협력을 확대하는 새로운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 현재까지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민주적인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국제질서의 발전과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 정부의 향후 외교정책은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익 외에 국제질서 자체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설사 장기적인 청사진이 존재한다고 해도,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을 무기화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각국의 대응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트럼프주의는 이미 국제질서에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각국의 다자주의적 참여를 저해하고, 개발 협력을 국익 중심으로 재편한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도 더욱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주의 외교가 국제질서의 퇴보를 불가피하게 하는 임계점을 넘어설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조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한국의 외교정책 또한 국익을 고려하면서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단기적으로 비를 피하되 집을 고쳐야 하는 장기과제를 인식하고 국제적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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