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공의 후예 15대 심수관
한일, 상호 ‘이해’ 대신 ‘허용’ 필요… 정치적 문제 정치인들끼리 풀어야
10월 남원서 한일 도예가 교류전 개최
‘심수관전’ 개최로 한일 인연 강조… AI 시대일수록 손으로 만드는 게 진실
심수관전이 열린 히로시마 소고 미술화랑 입구에는 심수관 가문이 일본에 정착하게 된 역사가 자세히 소개된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임진왜란 때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에 정착해 조선 도예 기술로 사쓰마야키를 구워낸 역사는 심수관의 정체성 그 자체다. 전시회 마지막 날인 이날, 심수관은 관람객에게 도자기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심수관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저에게 한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심수관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하는 것만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일본과 한국의 인연을 알릴 수 있죠. 엊그제 갤러리 토크를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사쓰마야키 역사를 소개했습니다. 일본 것이지만,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거슬러 간다는 큰 이야기를 느낄 수 있죠.”―한일 가교라는 존재감이 부담스럽진 않으신가요.
“전혀 없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일본인인가, 한국 쪽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둘 다라고 생각해요. 부모 중 한쪽이 일본인, 다른 쪽은 한국인인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런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너희들은 가슴에 두 나라를 품을 수 있다고, 중요한 역할을 맡아 태어났다고요.”
―한일 관계는 언제나 민감합니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인들끼리 해결하고 국민은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양국 국민이 이렇게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아는데, 국민을 이용해서야 되겠어요. 종종 고교생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는데, ‘애국심은 불량배의 마지막 도피처’(영국 문필가 새뮤얼 존슨의 명언)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학생들에게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말을 반복해 쓰는 어른이 있다면 절대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와” 웃으며 손뼉 쳐요. 애국심, 민족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말 알고 쓰는 건지, 국민 감정을 부추기기 위해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지켜보시면서 많은 생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영원한 이웃이니 기본적으로 우정으로 맺어져야 할 관계죠. 연간 1000만 명이 오고 가는 사이 아닙니까. 그런데 불매 운동을 하겠다며 제품을 발로 밟고, 국기에 불을 지르고…. 그런 수법은 더 이상 국민에게 통하지 않을 겁니다. 또 그러냐고, 또 그거냐고 할 거예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과거사를 생각하면 쉽게 넘어가긴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연구자가 여러 자료를 꼼꼼히 조사하는 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끄집어내고, 그것도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목적으로 한다면 유감입니다. 저는 상호 이해가 아니라 상호 허용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부부도, 부모 자식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죠.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구속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서로 고민해야죠. 검지로 상대를 가리키면 나머지 손가락 3개는 자신을 향하는 법이에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데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10월쯤 한국 도예가와 함께 교류전을 할 계획이에요. 심수관가 고향인 전북 남원시에서 행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일본 대(對) 한국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전시하고 차 마시면서 저녁에 가볍게 한잔하는 자리로요. 다음에 전화할 테니 맛있는 밥집 데려가 달라, 그렇게 하면 돼요. 친구가 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일본과 한국이 사이좋게 지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네,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일본인과 한국인이 모이면 됩니다.”
―한국에서 심수관 하면 지금도 1998년 전시회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시 ‘400년 만의 귀향: 심수관가 도예전’은 사실 제가 아버지(14대 심수관·2019년 별세)께 먼저 제안한 겁니다. 일본에 온 지 400년을 맞았으니 저희 집안의 오래된 작품들을 한국에 보여주자고 했죠. 처음에 아버지는 반대했습니다. 도자기를 옮기다가 깨지거나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냐고요. 아버지는 오래된 것을 보관하고 지키는 당대 입장이었죠. (2019년 별세한 14대 심수관은 “선조들이 대대로 만든 도자기가 밖으로 나간 것은 일본 정착 후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생전에 밝혔다) 제가 “이건 은혜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 뒤로 어디서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동아일보가 흔쾌히 나서줘 일민미술관에서 할 수 있었죠. 전시회는 아주 큰 화제가 됐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개막식 직전까진 올지 몰랐죠. 김 전 대통령은 관람 후 “한국인은 일본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했고, 일본은 그 기술을 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우리가 일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해 김 전 대통령이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일본 국회에서 과거사 인식 문제를 매듭짓고 40여 개 항목을 양국이 약속했죠. 그것만 제대로 지키면 한일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심수관 요(도자기 가마, 수장고 등이 있는 본산)는 한국 명예총영사관이기도 합니다.
“(14대 심수관은 1989년, 15대 심수관은 2021년에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로 임명됐다) 우리 집 대문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매일 게양합니다. 양국 국기를 이렇게 내거는 곳은 전 세계에 우리 집밖에 없어요. 주일 한국대사관은 태극기만, 주한 일본대사관은 일장기만 걸잖아요.”
―일본 우익들이 협박하진 않나요.
“전혀요. 오히려 한국 대통령 취임 때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축하 전화가 오더라니까요.”
조용할 줄 알았던 화랑은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장처럼 왁자지껄했다. 지방 도시의 소규모 전시회임에도 심수관 도자기를 보러 온 관람객들로 전시장은 북적였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술로 화려한 도혼의 꽃을 피운 심수관을 일본인들은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전시회는 자주 개최하시나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일본 곳곳에서 연 3, 4회 정도 엽니다. 심수관 요가 있는 가고시마현 미야마(美山)에 3년 전 다실을 만들었어요. 저희가 만든 그릇에 한국식 약선(藥膳) 요리를 드립니다. 비빔밥, 설렁탕, 삼계탕 같은 한국 음식을 몸에 좋은 재료로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요. 한국 손님께는 “한국 비빔밥과 조금 다르지만 즐겨 달라”고 부탁하는데, 다들 맛있게 드세요. 약선 요리라 건강에도 좋고요.”
―한국인도 많이 옵니까.
“꽤 오십니다. 예전 가고시마에 오는 한국인들은 주로 골프만 쳤는데, 이 지역 역사나 문화를 배우고 공부하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조금씩 변하는 게 보입니다.”
―심수관 요를 직접 찾는 방문객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전과 후가 달라요. 팬데믹 전에는 가고시마 지역의 여러 도자기 공방을 돌아보며 즐기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핀포인트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SNS에서 인기 있는 곳만 골라 온천욕 하고, 심수관 요 들르고, 쇼핑하는 식이죠.”
―SNS가 관광 스타일도 바꿨네요.
“그래서 그런지 내 발로 새로운 곳을 발견하거나 나만의 특별한 장소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줄었어요. 입소문을 듣거나 남의 평가만 보고 그대로 따라가면서 줄 서는 거죠. 그래서 SNS를 잘 활용하는 곳은 잘되지만, 정말 실력이 있는데 SNS에 서투르면 사라져 버려요. 그런 경향이 아쉬워요.”
―SNS가 활발하고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시대에 수작업으로 도자기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계산을 정확히 하고 긴 문장을 짧게 정리하는 일은 AI가 할 거예요. 주식 투자도 AI가 훨씬 뛰어나죠. 산업혁명으로 많은 블루칼라가 실직했듯, 이젠 화이트칼라가 실직하는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머리 좋고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런 분들이 물건을 만드는 현장에 왔으면 좋겠어요. 시대를 쫓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시대와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앞서가려는 한국인의 마음도 잘 알겠지만, ‘여러분은 먼저 가세요.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라는 삶의 방식이 앞으로 요구될 거예요. 심수관은 이곳에 계속 서 있을 겁니다.”
15대 심수관(沈壽官) |
1959년 14대 심수관 장남으로 출생. 와세다대 졸업 후 교토 도공 고등기술 전문학교, 이탈리아 국립 미술 도예 학교, 경기도 김일만 토기공장 등에서 도예를 익혔다. 1999년 15대 심수관을 습명(襲名·선대 이름을 계승)했다. 2006년 일본 총리관저에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 것을 비롯해 서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2021년 가고시마현 한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됐고 그해 7월 일본 최대 월간지 ‘분게 이슌주(文藝春秋)’에 ‘일본의 얼굴’로 게재됐다. 본명은 오사코 가즈테루(大迫一輝). |
히로시마=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