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와 시행사(개발업체) 사장이 전화를 받으면 살 만한 상태고, 해외 로밍으로 넘어가면 잠수탄 것이고, 며칠째 휴대폰이 꺼져 있으면 사고(법정관리) 난 것입니다.”
최근 한 건설회사 대표가 건설·부동산업계 상황이 심각하다며 전한 말이다. 올해 들어 중견 건설사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과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3년 전부터 이어진 고금리, 공사비 인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의 삼중고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 등 정부 부처는 물론 여야가 건설·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쪼그라드는 건설·부동산업
건설·부동산업은 고용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련이 깊다. 건설업 위축이 고용 감소와 내수 침체로 이어진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건축허가면적(대한건설정책연구원 기준)은 1억2589만㎡로 전년보다 6.8% 줄어들었다. 실제 착공에 들어간 면적은 7931만㎡로 허가 면적의 63.0%에 그쳤다. 건설 수주도 209조8000억원으로 2022년(248조4000억원)에 비해 크게 뒷걸음질 쳤다. 올해 1~2월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가 모두 109곳에 달한 이유다.
올해 아파트 분양 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1월 전국에 공급된 일반 분양 아파트는 총 3751가구로, 작년 12월(9435가구)에 비해 60%가량 급감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공급 물량은 5385가구로 월초 예정 물량(1만2676가구)의 42%에 불과했다. 시장 불확실성 확대, 수요자의 청약 심리 위축, 건설사의 공급 연기가 맞물린 결과다.
취업자 수도 내리막길이다. 올 1월 건설업 취업자(통계청 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만9000명 감소한 192만1000명으로 조사됐다. 건설업 취업자가 200만 명을 밑돈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1년 2월(198만 명) 후 약 4년 만이다.
건설업 정상화는 정쟁 대상 아니야
업계에서는 건설·부동산업을 살리는 해법으로 ‘시장 회복(정상화)’을 꼽는다. 아파트 거래가 늘어나고 지방 부동산 가격도 어느 정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지난달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은 5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관계 부처는 ‘부동산 시장 및 공급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투기 세력의 시장교란 행위 단속에 나섰다. 가계대출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이고 아파트 값은 오르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하지만 가계대출 증가는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 풀리는 긍정적 시그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6개월 만에 4000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단순히 대출 총량을 문제 삼기보다 차입자의 신용과 갭투자(전세 끼고 대출) 여부 등을 따져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설산업 정상화는 내수시장과 민생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만큼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투자를 촉진하고 내수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세금 중과, 대출 강화 등 각종 규제를 없애는 게 우선이다.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관점에서 건설투자를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