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가 한국을 저신뢰 사회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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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누가 한국을 저신뢰 사회 만들었나

스웨덴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현금 없는 나라’다. 실물 화폐 유통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스웨덴에 진출한 한 다국적 기업의 얘기다.

사건의 발단은 ‘금일봉’이었다. 스웨덴 법인의 눈부신 활약에 해외 본사 고위 임원이 직접 스톡홀름을 찾아 현금 뭉치로 인센티브를 전달했다. 그날부터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웨덴 법인 경영진은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현금을 직원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현지 직원들은 그 돈을 받아봐야 세무서에 현금 출처를 소명해야 한다고 읍소했다. 본사 금일봉이라고 설명해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들을 게 뻔했다. 꽤 큰 로펌과 상의한 결과다.

세금 사용처에 대한 믿음

글로벌 기업의 스웨덴 지사가 어찌나 궁지에 몰렸던지 잠시나마 비이성적인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태워 버리자.” 다행히 이성이 돌아와 그 법인은 이런 유의 회색지대 문제를 다루는 회사를 찾아가 처치 곤란한 현금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거리의 걸인에게도 디지털 페이로 온정을 나눈다는 중국도 한 수 접어야 할 스웨덴의 무현금 원칙은 스웨덴이 수십 년간에 걸쳐 달성한 고(高)신뢰사회의 단면이다. 스웨덴에서 부정한 돈이란 있을 수 없다. 복지국가 모델을 수립한 스웨덴의 시민들이 소득의 40%가량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군말이 없는 건 내가 낸 돈이 나를 위해 혹은 사회의 공익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부(富)에 대한 인식은 고신뢰 사회의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이와 관련해선 스웨덴 제1의 부호인 발렌베리그룹 회장의 일화 하나가 있다. 한국 국무총리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발렌베리의 상속자가 총리와 환담하기 직전까지도 홀로 회담장인 그랜드호텔 로비 소파에 앉아 있더란다. 이유를 스웨덴 공무원에게 묻자 현답이 돌아왔다. 일요일이라 수행할 직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랜드호텔은 발렌베리가 소유다. 그런데 회장에게 인사하러 오는 호텔 직원조차 없는 모습에 우리 정부 측 인사는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

스웨덴은 세계 최강의 ‘억만장자 보유국’이다. 스웨덴의 억만장자 재산은 국내총생산(GDP)의 31%에 달하며, 이는 미국보다 높다. 그럼에도 부를 우대하지 않는 건 누구나 평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강한 믿음 덕분일 것이다. 지독히 길고 우울한 스웨덴의 겨울 어둠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다. 찬란한 여름이 끝나면 그들은 일상에 순응하며 가족과 함께 내년에 반드시 찾아올 또 한 번의 여름을 기다린다.

한때 한국 사회도 신뢰에 기반해 작동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재앙이며, 민주주의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먹고살 길은 수출뿐이라는 것, 이 세 가지 확고한 신념이 지금껏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누구를 막론하고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신뢰가 무너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낭비를 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이재명 정부의 백약(百藥)이 효과를 내려면 무너진 사회적 신뢰부터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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