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계해야 할 세대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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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계해야 할 세대론의 함정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세대론이 부상한다. 요즘 회자되는 ‘보수 2030’ ‘진보 4050’ 같은 세대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복잡한 정치 현상과 민심 변화를 세대론에 대입해 분석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 접근은 현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사회과학적 분석 대상으로 세대(generation)를 주목하고, 현대적 의미의 세대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사회학자가 카를 만하임이다. 그는 1922년 발표한 논문 ‘세대 문제’에서 한 세대의 집단적 동질성을 의미하는 ‘코호트’ 개념을 제시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동년배 집단은 생애 주기를 함께 하면서 유사한 정치·사회적 경험에 노출되고, 결국 특정 범위 내에서 비슷한 태도와 성향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세대 내 이념 갈등 수렴이 중요

100년 전 정립된 이 코호트 분석법은 현대사회의 세대 연구에도 유의미하게 활용된다. 그러나 종종 간과되고 잊히는 건 만하임의 애초 연구 의도다. 그의 연구는 ‘세대 간 차이’가 아니라 ‘세대 내 차이’에 초점이 맞춰졌다. 같은 세대 안에서 때때로 극명하게 상반된 이념 대립이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내려 했다. 예컨대 우리 현실에 빗대면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2030세대 한쪽에선 탄핵을 지지하고, 다른 한쪽에선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현상 말이다.

만하임은 하나의 코호트 내에서도 다양한 ‘세대 단위’, 즉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작은 집단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들이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공유된 기억을 형성한다고 봤다. 여러 세대 단위가 갈등하면서 결국 하나의 실제 세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공유했던 정치·사회적 의제와 행동 양식이 해당 세대 전체를 아우를 공통 기억으로 남는다는 해석이다. 이념과 문화 격변기인 1980~1990년대 한국 사회에 등장한 386세대와 X세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세대 갈라치기 하는 정치권

이처럼 세대론의 근저에는 세대 내 다양한 갈등 봉합과 수렴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 작동이 전제돼 있다. 특정 세대의 코호트적 동질성을 명쾌하게 정의내리거나 한칼에 재단하는 것은 그래서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세대 형성 과정이 이렇게 다층적인데 단순히 세대 간 차이를 부각시켜 다양한 정치·사회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자칫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상’이란 본질적 진실을 가릴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은 양극화, 인구구조, 노동시장 등 더 심층적인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 세대를 관통하는 뚜렷한 특징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모호함 때문에 특정 세대 담론이 여론을 선동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정치 혼돈의 시기, 가라앉았던 세대 프레임이 악취를 풍기며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다. “2030세대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켜야 한다” 등의 괴담 같은 정치 발언이 야당 인사 입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은 세대 프레임을 악용해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의 구태다.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그들이 바로 공공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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